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수필 읽는 걸 좋아한다. 내가 체험하지 못한 일을 겪은 이의 얘기를 듣는 것도 좋고, 그 경험 속에서 그가 깨달은 걸 전해 받는 것도 좋다. 앞의 좋음은 낯선 경험을 마주하는 재미이고, 뒤의 좋음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누군가의 지혜를 간편하게 섭취하는데서 오는 즐거움이다. 경험과 깨달음. 쓰고보니 이게 내가 수필을 즐겨 읽는 이유인가보다.

에세이를 읽을 땐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일들에 공감하거나 그때의 깨달음이나 느낌에 '나도 이런 적 있어'하고 내 경험을 떠올리며 밑줄을 친다. 이때 재밌는 순간은 다른 경험에서 비슷한 걸 느꼈다고 생각되는 지점을 만날 때다. 이를테면 숨을 쉬는 것, 호흡에 대해서 '들이쉬고 내쉬는 순간과 과정에 충실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감내할 힘이 생긴다'는 느낌을 난 요가를 하면서 배웠지만 다른 사람은 도수치료를 받으며 느꼈다는 것. 이런 걸 알게되는 순간이 반갑다. 다른 경험 속 비슷한 깨달음을 만나면 그때의 내 느낌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좀 더 공인받는 것만 같고, 내 생각이 좀 더 믿음직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늘 숨을 쉬지만 숨쉬는 데 집중하는 시간을 얼마 되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 호흡하지만, 나도 모르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잊고 사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호흡이 절실한 때는, 호흡이 빛을 발하는 때는 어떤 고비를 맞이했을 때다."(p.158) 오은 시인은 숨통이 트이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난 도수치료를 받아본 적이 한번도 없지만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때 그가 느꼈을 느낌과 들었던 생각이 어떤 모양이었을지 알것 같았다.

오은 시인의 산문집 <다독임>을 읽었다. 시인의 일기를 모아둔 것 같은 이 책에는 단어에 대한 고민부터 어떻게 살것인가 삶의 태도에 대한 고민까지 담겨있다. 신문 칼럼에서 보던 그 다정한 태도가 바탕이 된 글들이 다수였지만, 그 안에서 무례한 사람에게 자신도 모르게 화를 뱉어낸 에피소드 같이 솔직해서 읽기 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시인의 모습도 만날 수 있어서 더 귀여운 책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들이 투명하게 비치는 솔직한 글들이 기억에 남는다. 세상일을 유심히 보고 그걸 자기 답게 풀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의 단상을 씹어 읽었더니 나도 일상을 한입 한입 잘 곱씹어 남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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