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물을 먹으려고 잠들기 전 화장대 위에 물 겁을 올려놓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남편은 내 허락도 없이 그 물을 마신 후 컵을 씽크대에 갔다 놓는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그 위치를 알기에 손을 내밀고 물컵을 찾지만, 물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눈을 뜨고 냉장고에 가서 물을 꺼내 마신다.시각 장애인은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장애물을 피하고 조심스럽게 반응해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요즘은 앞을 보지도 않고 핸드폰만 보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기에 오히려 시각 장애인이 일반인을 피해서 걸어야 한다.시각 장애인은 사물을 볼 수 없기에 사전 지식으로 입력된 건물의 위치와 방향 그리고 모양과 형태 등 때로는 냄새까지도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주변 환경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은 자유롭게 어느 방향으로든 걷고 또한 뛰고 움직인다. 그러나 시각 장애인은 흰 지팡이만을 의지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걷고 걷는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혹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는건 아닐까. 잠시 눈을 감고 손을 뻗어 한 발을 내딛어 본다. 먼저는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사물의 위치를 알기에 장애물을 피하고 감각에 의존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본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다. 눈을 감으니 먼저는 주변의 소리에 귀가 제일 먼저 반응한다.선을 긋고 ‘너는 넘어 오지마!’가 아닌, 손으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이 땅 가운데 펼쳐지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