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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쿠데타 - 글로벌 기업 제국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클레어 프로보스트 외 지음,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 시장 경제는 과연 민주주의와 함께 가고 있는 걸까. <소리 없는 쿠데타>는 그 질문에 정면으로 맞서며, 국가의 이름 아래 은밀히 진행되고 있는 기업 중심의 권력 이동을 생생하게 추적한다. 책의 출발점은 명확하다. 오늘날 기업은 단순한 시장의 참여자가 아니라, 법률 제도와 사회 시스템까지 뒤흔드는 또 다른 통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들은 영국 탐사보도센터(CIJ)의 지원을 받아 25개국을 넘나들며 국제기구, 개발 원조, 경제특구, 민간 군사조직, 조세회피처 등을 직접 취재하고 이를 하나의 실체로 엮어낸다.

이 책은 크게 네 영역으로 기업 권력을 분석한다. 첫째, 기업이 국제사법제도를 활용해 각국 정부를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는 ‘기업 사법’. 둘째, 원조와 개발 사업을 활용해 이미지와 수익을 모두 얻는 ‘기업 복지’. 셋째, 특구를 통해 국가의 규제에서 벗어나 별도의 질서를 만든 ‘기업 영토’. 마지막으로, 민간 보안 조직과 군사 시스템을 구축해 실질적 통치 수단을 갖춘 ‘기업 군대’에 대한 이야기다. 각 사례는 단편적이지 않고 복잡하게 얽힌 국제법, 로비, 이미지 정치의 세계 속에서 기업의 역할과 영향력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제도(ISDS)를 활용한 초국적 기업의 소송 사례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국제기구의 투자 방식은 익숙한 뉴스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다시 보게 만든다. 엘살바도르의 광산 채굴 금지, 남아공의 광산 정책, 독일과 함부르크의 환경 정책 등은 단순한 지역 이슈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이 어떻게 각국의 법과 정책에 개입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경제특구가 어떻게 노동자의 권리를 훼손하고 조세 회피의 장으로 기능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저자들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조용한 위기’에 맞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고민하자고 말한다. 정교한 법과 제도, 그리고 연대와 감시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언론과 시민사회, 국제 감시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것을 이 책은 차분히, 그러나 단호하게 상기시킨다.
<소리 없는 쿠데타>는 기업 권력과 국제 개발, 민주주의의 상호작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든 독자에게 필요한 책이다. 정치경제, 국제법, 환경운동, 국제기구 분야에 종사하거나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읽고 넘어가야 할 문제의식을 품고 있다. 지금,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으며, 어떤 방향을 택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묻고 답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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