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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밤하늘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흥미진진하면서도 재미있는 작품. 페이지를 넘기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 되는 소설입니다. 특히 밤하늘 에디션은 내용과 더없이 잘 어울리면서도 멋진새로운 표지 디자인과 어우러져서, 더욱 좋습니다.
작별인사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마치 처음에는 맨눈으로 주변 풍경 등을 바라보다가, 망원경으로 망원경 너머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씩 망원경 배율을 꾸준히 높이면서, 더욱 큰 스케일의 풍경을 눈에 담게 됩니다. 작별인사는 일단 겉으로는 짧은 독립적인 이야기가 옴니버스처럼 쭉 연달아 나오는 구성에, 초반부는 소설이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일상에서 흔히 있을 법해서 사람들도 무심히 지나갈 법한 풍경을 절묘하면서도 담담하게 묘사합니다.
작별인사라는 제목처럼, 평범한 아이는 일상에서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을 떠나보내면서 스스로는 작별 인사를 하는 심정이 됩니다. 어른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아이에게는 아주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묘사와 함께, 어느새 그 어린이의 심정에 공감하게 되면서요. 그리고 이 구성은 갈수록 스케일이 커지면서도 은근히 구도가 반복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인간 한 명이 하찮게 여겨질 정도의 스케일에서 그 느낌을 다시 구현하는 상황이 됩니다. 단 초반에는 소소한 것에 작별을 하며 떠나보내는 느낌이었다면, 후반부에는 인간이 오히려 거의 똑같은 구도에서 주체에서 객체가 되는 상황이 됩니다.
김영하 작가의 글은 그 반복되는 구조에서, 재탕이 아니라 거의 비슷한 구도가 반복되기에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바뀌는 미묘한 역설을 잘 살려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주체와 객체가 어느새 뒤바뀌는 상황에서, 그 미묘한 역설은 강렬하면서도 독보적인 인상과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게 됩니다.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는 워낙 유명해서, 아직도 널리 회자될 정도입니다.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가, 나비가 나의 꿈을 꾸는가.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작별인사는 초반에는 이런 호접몽같은 구성으로 이어질 것 같은 전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예측을 하는 독자가 호접몽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야기가 슬슬 나올 것 같다고 짐작하게 될 즈음, 작별인사는 언뜻 결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더욱 본질적인 면을 꿰뚫는 화두를 툭 던집니다.
사람보다 더욱 사람같고, 보편적인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면모가 강한 존재를 만든다면, 그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인간이라고 해야 한다고, 곧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존재에 인간답다는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만들어진 존재가 더욱 인간답다면, 인간답다는 평가 같은 표현은 써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존재가 만들어진다면, 이른바 인간적이라는 표현과 기준은 어떻게 정립해야 할까요? 인간으로 태어난 생명체에게만 인간답다는 표현을 써야 할까요? 진짜 인간이지만 측은지심 같은 것은 전혀 없는 잔혹하고 비정한 면모만 보일 경우, 비인간적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진짜 인간에게 그 태도에 따라 인간답지 않다는 표현을 써도 된다면, 역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면 인간답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아닌 만들어진 존재에게 끝내 인간답다는 표현만은 꺼려진다는 반응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작별인사의 클라이막스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합니다. 만들어진 물체가 진짜 인간보다 사람에게 더욱 의미 있는 인간적인 경험과 감정을 안겨 준다면, 그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요.
그게 어차피 가짜고, 만들어진 거라고 매도하는 것은 편합니다. 아주 간단하기도 합니다. 작별인사 책에서도, 만들어진 존재가 인간다운 면모를 보이면 인간으로 여겨야 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부분은 없다시피합니다. 하지만 만들어진 존재가 진짜 인간보다 더욱 인간다운 면모를 보이고, 살아 있는 사람이 그로 인해 그 무엇보다 큰 행복과 기쁨을 얻으며, 다른 사람은 절대 채워주지 못했을 부분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대목을 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이분법처럼 매도하는 것이 세상을 숫자로만 보는 탁상행정과 과연 얼마나 다를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탁상행정은 종이 위의 기준은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실제 현실에서 당사자에게는 도움이 안 되거나 때로는 악영향을 끼치기 십상이라는 부작용까지 포함해서요.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존재. 그리고 그 존재는 인간적으로 만들어지도록 기획된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과 같이 끊임없이 교감하며 영향을 주고받은 끝에 인간보다 더욱 인간다운 모습으로 거듭났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존재가 됩니다. 인간의 삶이 우주 스케일에서는 인간 눈에 비치는 먼지 티끌만도 못한 존재감을 지닐 정도로 미미하다는 점까지 더해지면, 그 딜레마같은 상황은 더한층 강화됩니다.
한 사람이 절망해도, 혹은 그 사람이 죽어도, 우주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의미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다른 존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더없이 소중할 수도 있습니다. 작별인사는 언뜻 보면 서로 대립하는 듯한 저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담아내면서,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면모도 인상적이고 깊이 있게 묘사하면서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인간은 그 무엇보다 인간적일 수 있는 존재이자,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존재가 나타나면 배척하는 대신 같이 행복해질 수도 있는 존재라는 이야기와 함께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우주 스케일 속에서 사람 한두 명 스케일의 이야기를 종종 비중 있게 묘사하는 것은, 배경 규모에 비해서 하찮고 사소한 디테일이 전혀 아닙니다. 수많은 사연과 각자의 이야기가 수없이 존재하는 가운데, 그 개인의 소중한 사연과 이야기를 각자 지니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고 자신들에게는 소중한 일인지 미시사처럼 조명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만들어진 존재가 인간다운 면모를 보인다면 인간처럼 대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논쟁하는 것보다, 당사자에게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욱 의미 있는 인간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 처절할 정도로 처연하고 애절한 사연으로 남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작별인사는 마치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사용하는 듯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우주 스케일의 이야기와, 미시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소소한 스케일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우주 이야기에서도, 현미경으로 보는 것에 비견할 법한 미시적인 이야기에서도 동시에 인상적인 이야기를 펼치면서, 그 다양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조화롭게 아우르며 융합하는 데 성공한 독특한 재미와 여운을 남기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