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심사임당의 생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504년 : 강원도 강릉 북평촌에서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이씨 사이에 둘째 딸로 태어났다.
1510년 : 외가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어렸을 때부터 글씨와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
1519년 : 글씨와 그림,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 온 마을에 소문이 났으며, 1521년에는 아버지의 병환에 어머니가 정성을 다하는 것을 보고 효를 몸소 터득하며 배웠다. 1522년에는 덕수 이씨 집안의 이원수와 결혼했으며,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3년상을 치르기 위해 그대로 찬가에 머물렀다.
1524년 : 남편을 따라 한성 시댁으로 갔으며 첫아들 선을 낳았다. 그런 도중 강릉 친 어머니를 못잊어 다시 강릉으로 돌아왔다. 그 무렵 강릉 북평 마을에는 어머니 이씨의 열녀 정각이 세워졌다.
1529년 : 맏딸 매창을 낳고 한성으로 돌아갔으며 경기도 파주 율곡리에 자리 잡고 둘째 아들과 둘째 딸을 낳았다. 그러다 또다시 친정 어머니의 병환으로 강릉길을 올라 학문과 그림에 몰두하며 남편을 공부시켰다. 1536년에는 검은 용이 방으로 들어오은 꿈을 꾸고 셋째 아들 율곡을 낳았다.
1541년 : 다시 한성으로 가는 길에 대관령에서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본다>라는 시를 지었으며, 친정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에 <어머니 그리워>라는 시를 지었다. 뿐만 아니라 자식 교육에 힘써 사서 삼경과 서예, 그림, 바느질 등을 가르쳤다. 1542년에는 넷째 아들 우를 출산했다.
1550년 : 남편 이원수가 수운 판관의 벼슬에 올랐다. 1551년에는 1541년부터 살던 수진방에서 삼청동으로 이사하여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세곡 운반을 위해 평안도로 간 사이 몸져 누워, 같은 해 5월 17일 세상을 떠나 파주 두문리 자운산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