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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완전정복 5 - 전성기 백제를 주목하라
유정룡 지음 / 잎파랑이(제이제이북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이 한국사 완전정복이라는 책을 읽고 '낯 뜨거우니 가려다오'라는 이야기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이야기먼저 들어보겠습니다.
"낯 뜨거우니 가려다오"
고구려의 9대 임금인 고국천왕의 왕비였으면서 고국천왕이 서거하자 당시의 형사취수 풍습대로 고국천왕의 둘째 동생 연우와 결혼하여 10대 산상왕의 왕비이기도 했던 우씨는 한겨레 왕조사에서 보기 드문 기록을 등재하였다.
서기 234년9월 두 왕의 왕비였던 우씨는 운명의 순간 이렇게 유언을 남겼다.
"아무리 형사취수라 해도 두 왕과 결혼한 것은 그리 좋은 행실이 아니었다. 장차 무슨 얼굴로 지하의 국양왕을 보겠는가?내 죽으면 나를 산상왕릉 곁에 묻어 주기를 바라오."
우씨는 그냥 고국천왕릉 옆에 묻어달라고 하지 왜 굳이 산상왕릉에 묻었달라고 했을까? 그리고 두 왕과 결혼한 것은 그리 좋은 행실이 아니지만, 내가 우씨였다면, 9대왕 옆에게 묻어달라고 했을것이다.
군신들은 태후 우씨를 장사 지내 산상왕 곁에 묻었다. 다음날 봉분 작업을지휘하던 군신들에게 나라의 제사를 주관하던 무당이 와서 말하였다. "국양왕께서 나에게 내려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제 우씨가 산상 곁에 묻힌 것을 보고 분함을 참을 수 없어 산상과 싸우고 돌아왔는데, 낯이 뜨거워 차마 백성들을 볼 수 가 없다. 네가 조정에 알려서 나와 산상의 무덤 사이를 무언가로 막아다오.' 라는 겁니다. "
그 말을 들은 조정의 군신들은 산상왕릉 앞에 소나무를 일곱 겹으로 심어 두 왕릉이 서로 보이지 않게 하였다고 삼국사기는 전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이 내용으로 보아 씨족사회의 풍습으로 부족사회를 거쳐 연맹체 국가로 넘어온 형사취수 풍습은 그 이전엔 관습법이나 마찬가지로, 혹은 불문율처럼 옹가와 미간에 행해지다가 고대국가로서의 기강을 세우고, 중국의 발전된 예학이 유입되면서 새 시대엔 맞지 않은 문제점들을 인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낯 뜨거우니 가려다오" 라는 이야기를 읽고 쓰니까 우씨가 왜 고국천왕릉 옆에다가 안 묻어주고 산상왕릉에다가 묻어달라는 지 알것 같다. 역시 역사이야기는 재미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