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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 조선의 역사가 깃든 궁궐 ㅣ 신나는 교과서 체험학습 83
손용해 지음 / 스쿨김영사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안녕하세여. 저는 오늘 이 창경궁이라는 책을 읽고 창경궁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모를 까봐 써봅니다. 마침 저도 잘 몰라서 알아보겠습니다.
창경궁 :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1484년(성종 15) 당시 생존하였던 세 왕후(세조·덕종·예종)의 거처를 위해 옛 수강궁 터에 지은 것이다. 이때 지은 집이 명정전·문정전·수녕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과 양화당·여휘당 및 사성각 등이다. 전각의 이름은 서거정(徐居正)이, 정전(正殿)인 명정전의 상량문은 김종직(金宗直)이 지었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전각은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되고 나서도 몇 차례의 화재가 있어, 그때마다 내전이 불탔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대체로 임진왜란 후에 재건한 명정전을 비롯한 그 회랑과 그 앞문인 명정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등 외전과, 1834년(순조 34) 다시 지은 숭문당·함인전·환경전·경춘전·통명전·양화당·집복헌·영춘헌 등의 내전으로 나눌 수 있다.
궁의 배치를 보면, 동쪽 한가운데에 ‘凸’자 모양으로 불룩하게 나온 중심부분에 있는 중층삼간누문(重層三間樓門)인 홍화문을 들어서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금천(禁川) 위에 놓인 옥천교가 있고, 이를 건너면 명정문과 좌우 행랑채가 있다. 이 문을 지나면 널찍한 뜰이 나오고, 그 일직선상의 중층으로 된 기단 위에 명정전이 있다. 홍화문 좌우의 행랑이 이 명정전까지 계속되면서 울타리를 이루어, 창경궁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명정문은 홍화문보다 높은 지대에 있고, 명정전은 명정문보다 한층 더 높은 곳에 있는데, 이러한 예는 창덕궁과 개성(開城)의 만월대에서 볼 수 있다.
아하!그런데.. 궁의 배치에서 동쪽 한가운데가 볼록할철(凸)모양이 좀 암튼 창경궁이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3호로 지정이 되었구나!
그러나 순종 즉위 후 창경궁은 일제에 의하여 크게 훼손되었다. 1909년(순종 3) 일제는 궁 안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며, 한일합병이 이루어진 뒤인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또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맥을 절단하여 도로를 설치하였으며, 궁 안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수천 그루나 심어놓고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를 시작하였다.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관광시설로 이용되다가 1980년대에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을 세워 1983년 7월 1일부터 복원공사를 위하여 일반공개를 중단하였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원래의 명칭인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1984년부터 1986년 8월까지 동물원과 식물원 시설 및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문정전 등을 복원하였으며, 벚꽃나무도 소나무·느티나무·단풍나무 등으로 교체하고 한국 전통의 원림(園林)을 조성하는 등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나는 오늘 이 책을 읽고 창경궁이 1963년 1월 18일에 사적 제123호로 지정되었다는 것을 옛날에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까먹은 상태였지만 오늘 이 책을 읽고 써보니까 창경궁의 기억이 생생하게 내 머리안에서 기억나고 있는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