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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과 정동 : 살아 있는 근현대 역사의 현장 ㅣ 신나는 교과서 체험학습 85
이종호 지음, 이유나.이종호 그림, 이이화 감수 / 스쿨김영사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이 덕수궁과 정동이라는 책을 읽고 광해군은 왜 다른 왕들처럼 종이나 조를 붙이지 않은 까닭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 알아보겠습니다.
반정이란 정치를 잘못하고 있는 왕을 폐하고 새로운 왕을 세워 그릇된 정치를 바로잡으려고 일으킨 사건을 말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반정이 두번 일어났는데, 중종과 인조가 이런 반정을 통해 왕이 되었지요. 원래 '조'또는'종'이 붙는 왕의 묘호는 왕이 죽은 뒤에 붙이는 것이에요. 나라를 세웠거나 큰 업적이 있는 왕에게는 '조'를, 앞선 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덕으로서 나라를 다스린 왕에게는 '종'을 붙였지요.
그런데 연산군과 광해군은 죽기 전에 이미 폐위되었으니 반정을 일으킨 세력들이 왕으로 인정할 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세자 때 불리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지요. 연산군과 광해군 때의 역사도 실록으로 기록하지 않고 격을 낮추어 <<연산군 일기>>와 <<광해군 일기>>로 각각 전해 오고 있어요.
무덤도 왕의 무덤은 '능'이라 불리지만 연산군고 광해군의 무던은 군의격식에 따라 그냥 '광해군묘', '연산군묘'라고 불려요. 그뿐만 아니라 왕이 묻혀 있다고 보기에는 무덤의 규모도 작고 초라하답니다.
<<광해군 일기>>나 <<계축 일기>>의 기록을 통해 광해군 때의 일들을 알수 있어요. 이 책들은 모두 그 당시 광해군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일부러 좋지 않게 쓴 부분도 있을 것으로 여겨져요. 그래서 요즘에는 광해군을 다시 평가하려는 시도들도 있답니다.
아하! 연산군과 광해군이 능도 아니고 왜 묘라하면 둘다 죽기 전에 이미 폐위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중종이 누구인지 알아봐야겠다.
중종 : 자는 낙천(樂天), 휘(諱) 역(懌)이다. 성종의 2남이며 연산군(燕山君)의 이복동생이다. 어머니는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尹氏), 비는 신수근(愼守勤)의 딸 단경왕후(端敬王后), 제1계비(繼妃)는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章敬王后), 제2계비는 윤지임(尹之任)의 딸 문정왕후(文定王后)이다.
524년 권신(權臣) 김안로(金安老)의 파직, 1525년 유세창(柳世昌)의 모역사건, 1527년 작서(灼鼠)의 변에 따른 경빈(敬嬪) 박씨의 폐위 등 크고 작은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1531년 김안로의 재등장으로 정국은 혼미를 거듭하였는데, 문정왕후를 배경으로 한 윤원로(尹元老) ·윤원형(尹元衡) 형제가 등장하여 1537년(중종 32) 김안로를 숙청하였으나, 이번에는 윤원형 일당의 횡포가 시작되었다.
한편, 주자도감(鑄字都監)을 설치하여 활자를 개조하고, 지방의 사실(史實)을 기록하기 위하여 외사관(外史官)을 임명하였으며, 1540년(중종 35) 역대 실록(實錄)을 인쇄하여 이를 사고(史庫)에 보관하게 하였다. 중종의 치세에서 처음에는 어진 정치를 펴는 데 상당히 의욕적이었으나, 기묘사화 이후 간신(奸臣)들이 판을 치는 통에 정국은 혼미를 거듭하여 볼만한 치적을 남기지 못하였다. 능은 경기 고양(高陽)으로 하였다가 1562년(명종 17)에 이장하였다. 능호는 정릉(靖陵)이며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광해군과 연산군이 죽기 전에 이미 폐위되어서 그렇게 된 것을 알아서 기쁘다. 모르고 있었다가 알면 역시 기분이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