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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열리지 않은 선물 - 감옥 같은 삶을 꽃피우듯 아름다운 시절로 만드는 지혜
원제 지음 / 불광출판사 / 2023년 5월
평점 :
요즘 승려들에게 과연 고요함이 있을까? 손에는 다들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세상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고 내장된 전화번호는 수십 내지 수백개에 달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 수도, 받을 수도 있다.
법정 스님은 세상의 시끄러움과 소란으로부터 도피하고자 산으로 더 깊은 산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전화하는 행위는 무뢰배들의 행동이라고 일침을 가하셨다. 그런데 바야흐로 스마트폰의 시대는 승려들을 더 이상 고립되게 놓아두질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참나를 찾을 수 있을까? 동안거 하안거 중에도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연락할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安居라고 할 것도 없다. 지금의 환경은 불교가 탄생한 이래 승려들이 참나를 찾는데 있어 가장 힘든 조건이다. 세상과의 단절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도의 경지가 깊으면 시장 바닥에서라도 참나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도력을 갖춘 승려가 몇이나 되겠는가? 참선에 든지 채 10분도 못되어 화두는 도망가고 온갖 잡념과 망상이 찾아드는 승려들에게 스마트폰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대왕 마구니에 다름 아니다.
年前에 열반하신 봉암사 적명 스님은, 수좌는 좌복 위에서 죽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한다. 수좌는 참선을 통해 진여(참나)를 찾는 구도자이다. 그건 여행을 통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구 끝 아니 명왕성을 넘어 가더라도 거기에 참나는 없다.
오직 내 마음 안에 있을 뿐이다. 안거가 끝나면 수고비(?)조로 절에서 지급하는 돈을 받아 쏜 살 같이 밖으로 뛰쳐나가는 승려들이 많다고 들었다. 이런 승려들은 거의 십중팔구 참선 중에도 화두는 망각하고 여행 계획이나 세웠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해서 수백번 안거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성철 스님과 송담 스님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다. 말을 적게 할 것...물론 말이란 글도 포함된다. 송담 스님은 참선이나 도를 닦는데 있서 오욕락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말 많은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손에 들려 있는 전화기, SNS, 사찰 한 켠에 나찰처럼 자리하고 있는 컴퓨터, 그리고 예전보다는 훨씬 쉬워진 출판 환경...이런 것들이 승려들의 침묵을 방해한다. 참나를 찾기보다는 아직 여물지 않은, 풋사과 같은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이렇게 해서 과연 진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자신의 글이 활자화되는 것은 명예심을 한껏 자극한다. 뭐라도 써내고, 독자들이 좋다는 반응을 보이면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게 바로 수행의 길에 가장 큰 마구니임을.
아마 근래 들어 글로써 이름을 얻은 대표적인 승려를 들자면 당연히 법정 스님일 것이다. 그런 법정도 결국 자신이 남긴 글을 부질없는 말 찌꺼기라면서 더 이상 출판하지 못하도록 유언하셨다.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는 철저한 禪僧으로 살고 싶다는 뜻을 남기셨다.
요즘 많은 승려들이 책을 쓴다. 하지만 글로서의 가치는 솔직히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에 실려있는 무소유, 잊을 수 없는 사람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수좌는 안거 기간에 상관없이 좌복 위에서 도를 구해야 한다. 그런 진짜 승려가 많아야 한국불교가 산다.
중생들이 갈구하는 것은 스님들의 설익은 말과 글이 아니다. 진짜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不二中道의 진여세계로 이끌 수 있는 참된 선지식의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