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나리아

플라나리아 - 제124회 나오키상 수상작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예문사 / 2016년 2월

"돈 버는 인간이 그렇게 대단해? 백수로 사는 게 뭐가 어때서?" 라는 한 줄의 문구가 이 도서를 설명한다. 무조건 일을 하고
치열하게 살아야만 "잘 사는" 삶은 아니라는 듯한 이 문구에 매료되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누구나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일을 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결국에는 많은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고 그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경쟁하고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던 자신의 모습으로 사회에 녹아들게 된다.
하지만, 이 책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부적응자, 혹은 문제아들이라고 불릴만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플라나리아>는 <플라나리아>, <네이키드>, <어딘가가 아닌 여기>, <죄수의 딜레마>, <사랑 있는 내일> 총 다섯 편의 단편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전문직으로 일하던 여성이 어느 날 젊은 나이에 유방암 수술 이후 삶에 대한 무기력함을 느끼며 다음 생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몸이 이등분으로 잘려도 아무 문제 없이 다시금 몸이 자라나는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여성과
실직과 이혼을 한 뒤 할 일 없이 만화방에만 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여성, 구조조정으로 실직을 한 남편을 대신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엄마와 부모님으로부터 자립하지 못한 대학원생 커플 등이 등장하는데 모두들 일을 하지 않은 채 백수로 지내면서 무기력함에 빠지거나
삶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든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이 모든 주인공들은 모두 접할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들과 때로는 자신의 모습을 닮고 있어
더욱 공감하며 읽게 된다. 주인공들의 감정은 한 번쯤 느끼게 되는 문제들이며, 그로 인해 누구나 그들의 속내를 더욱 이해하고 위로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이야기 자체들 모두 담담하게 그려진 듯하지만,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를 잘 표현하고 있어서 더욱 마음에 와닿는 작품들이었다.

요즘 우리나라도 많이 직면하고 있는 실직과 젊은 청년층의 백수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고,

어쩌면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다던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마모토 후미오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지만, 가벼운 듯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문체와 감정의 이야기들이 와닿아 또 다른 작품들도 만나보고 싶어졌다.

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

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 - 정여울과 함께 읽는 생텍쥐페리의 아포리즘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5년 12월

<어린 왕자>로 유명한 생텍쥐페리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 <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은 책 표지의 “오직 마음으로 볼 때만 분명하게 보인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라는 글귀처럼, 보이지 않아 더욱 소중하고 따뜻한 글을 담고 있다. <어린 왕자>의 작품자체가 많은 어른들에게 따뜻함과 동심, 놓치지 말아야 할 감성들을 담고 있듯이 생텍쥐페리의 여러 작품들 역시도 이야기한다. <어린 왕자>만 거의 유명하게 자리 잡은 것이 안타깝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 역시도 다른 작품들은 크게 접해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놓칠 수 있었던 좋은 작품들을 알게 되어서 정말 좋았다.

이 책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물론이고, <인간의 대지>와 <야간 비행>, <남방 우편기>를 담고 있는데, 저자가 앞서 간결하게 소개해주고 있는 문구를 통해 책에 대한 느낌을 전달 받을 수 있다. <어린 왕자>는 간결하고 서정적인 언어로 ‘길들임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야간 비행>은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속으로는 조종사들과 하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따뜻한 현자의 역할을 하며, <남방 우편기>는 생텍쥐페리의 작품들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며, <인간의 대지>는 생텍쥐페리의 모든 것이 응축된 아포리즘의 보물 창고라고 말하고 있다. 생텍쥐페리의 명문장과 저자가 나눈 대화록을 담고 있는데, 프롤로그에서 언급하고 있는 ‘다정’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다. 생텍쥐페리의 전체적인 이야기에 담겨 있는 ‘다정’한 속삭임들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한 구절인 “마음의 친구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열지 않을 문을 당신에게 여는 사람으로, 그의 일부는 당신에게 속해 있다. 그런 참된 친구는 언제나 진실만을 말한다. 그 사람 마음의 일부가 당신을 싫어한다 해도 여전히 그는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글귀를 읽으면서 친구를 포함한 타인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대한 어려움과 나 역시 누군가에게 문을 열고 다가가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장 생소하면서도 와닿았던 작품이 <인간의 대지>였는데, “생텍쥐페리의 모든 것을 가장 간결하게 압축한 작품”이라고 꼽은 것처럼 이야기자체가 흥미롭고 그 속에서 느끼고 전해지는 감동과 여운이 크게 전해졌다. 인간의 한계뿐만 아니라 인간이 느끼게 되는 가장 본질적인 감정부터 강인한 마음까지, 인간의 모든 기본적인 것부터 한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감정들을 다채롭게 그려내고 있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작품인 듯하다.

“모두들 눈에 보이는 이윤만을 추구하도록 몰아세우는 세상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한 가치를 조금씩 쌓아올리는 사람들의 느리디느린 열정이 환영받지 못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느리고 꾸준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때, <어린 왕자>와 같은 불멸의 걸작이 나올 수 있고, ‘보이지 않는 노력’을 이해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따스한 ‘공명’도 가능해질 것이다.”라는 마지막 저자의 글귀가 다시금 따뜻하게 마음을 녹이는 듯하다.

종이약국

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종이약국. 책 제목을 들으면 언뜻 드는 생각은 약을 파는 곳인데 종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종이약국은 주인공인 페르뒤 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바로 책을 파는 서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주인인 페르뒤 씨가 직접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 나름의 상태를 진단해 그들에게 필요한 책을 직접 처방하여 판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때문에 약을 처방하듯이 그에 맞는 책을 처방하기 때문에 종이약국인 것이다. 더욱이 파리의 센 강위에 놓여 있는 수상 서점이라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다.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책의 냄새가 고스란히 느껴지고, 아늑하고 설레는 서점의 모습들이 눈앞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누구나 크고 작은 수많은 상처들을 껴안고 살아간다. 이 상처들은 때론 기억에서 사라져 무덤덤해지기도 하지만, 때론 인생을 살아가는 내내 스스로를 괴롭히는 아픔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상처들에 대해 이해하고 처방해주는 책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와 아픔을 이겨내고 새로운 자신을 찾고 인생을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정작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처방해주는 종이약국의 주인인 페르뒤 씨는 자신의 가슴에 묻은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꽁꽁 닫아두었다. 집 안에 있는, 책더미로 가려진 굳게 닫혀 있던 방 안의 버리지못하고 쌓여 있는 물건들처럼 자신의 상처 역시 꽁꽁 쌓여 버려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그에게 인생을 바로잡을 계기가 생긴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옆집으로 이사온 르P 부인에게 식탁을 주기 위해 꽁꽁 닫아 두었던 방의 문을 열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녀에게 건넨 식탁에서 20년전 페르뒤 씨가 사랑했던 마농의 편지가 발견되면서 드디어 페르뒤 씨는 상처로 얼룩진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닻을 올려 종이약국 이끌고 여행을 떠나게 된다.
페르뒤 씨는 여행을 통해 가려졌던 진실을 마주하고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사랑했던 여인 마농까지 만나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페르뒤 씨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쉽게 내어버리지 못해 스스로를 상처 속에 방치했던 기억들을 돌이켜보면서 진정한 자신을 깨닫고,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된다. 누구나 이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상상병 환자들

상상병 환자들
브라이언 딜런 지음, 이문희 옮김 / 작가정신 / 2015년 10월

<상상병 환자들>은 제목만으로도 궁금증을 자아내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저 짐작만으로는 주변에서 흔히 한두 명쯤은 만나게 되는 사소한 아픔도 과하게 부풀어 앓아대는 꾀병쟁이들을 말하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책속의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상상병 환자들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나조차도 상상병 환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공감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나 이미 한 번쯤 맞닥뜨린 질병, 심기증.”이라는 글귀와 심기증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공감을 할 수밖에 없다. “현대인은 항상 어딘가 아프다. 편두통, 관절 통증, 소화불량,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그러나 흔히 ‘스트레스성’이라는 수식이 붙는 각종 질병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그 증세도 다양해서 분명하게 진단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때로는 꾀병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런 증후를 ‘마음의 병’이나 ‘건강염려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의 기원이 바로 ‘심기증’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는 ‘심기증’은 주변의 누군가를 떠올리게도 하고, 내 스스로의 모습도 떠올리게 한다. 몇 년 전에 한창 바쁜 회사 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컴퓨터로 작업하는 일들이 많을 때 자주 손목의 통증을 느끼곤 했었다. 분명 일에 허덕이며 손목터널증후군이라도 온 것이라 확신하며 병원을 찾았지만, 희한하게도 의사 선생님의 말은 괜찮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손목의 통증은 낫지 않았고, 또 같은 병원을 찾았을 때에는, 의사 선생님에게 어느덧 나는 꾀병을 자주 부리거나, 평소에도 작은 통증에도 엄살을 부리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런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엮을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에게 어느덧 심기증은 겪었거나 겪게 될 일인 것이다. 정신과 육체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심기증이라는 것이 더욱 알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심기증은 질병과 죽음에 대한 보편적 두려움과 개인의 선·후천적 기질에서 기인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양한 경험에서 겪게 되는 현상이 더욱 지배적인 듯하다. 저자도 소개 글에서 어려서부터 죽음을 가까이에서 많이 경험한 사람일수록 더욱 심기증적 경향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상상병 환자들>에서는 심기증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에서부터, 심기증을 겪은 유명한 9명의 사람들을 대표적으로 소개하며 더욱 흥미로운 내용을 전달한다. 제임스 보즈웰, 샬럿 브론테, 찰스 다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앨리스 제임스, 다니엘 파울 슈레버, 마르셀 프루스트, 글렌 굴드, 앤디 워홀이 바로 그들이다. 유명한 사람들이기에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제인 에어>의 작가인 샬럿 브론테는 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만성통증과 불안에 시달린 신경병 환자였고, 찰스 다윈은 고독한 시간을 간절히 원한 소화불량증 환자였다. 또 유명한 앤디워홀은 자신의 외모와 몸에 대한 콤플렉스로 시술에 의존하였다. 유명인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겪게 되는 심기증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와 사실적인 묘사들이 이해와 깊이를 더해 감춰두었던 스스로의 본질적인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읽는 내내 흥미로웠고,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어서 더욱 의미 있는 책이었다.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0월

<허즈번드 시크릿>의 작가, 리안 모리아티의 신작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은 “세 여인을 둘러싼 사소한 거짓말이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을 불러온다”라는 소개 글처럼, 일상생활에서 누구나가 겪을만한 사소한 거짓말이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미 <허즈번드 시크릿>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의 차기작품이라 더욱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허즈번드 시크릿>과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역시 책의 흡입력이 놀라웠고, 사소한 사건 하나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과 일상적인 부분들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우리의 인생 역시도 작은 일들이 모여 나아가는 것처럼 그녀의 작품은 우리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듯이 작은 부분 역시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보여준다.

책의 이야기는 피리위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진행되는데, 그 속에서 24살의 어린 싱글맘 제인과 당당하고 거침이 없는 매들린,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지만 소심한 성격의 셀레스트를 만나 친해지게 된다. 늘 6개월 이상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제인은 그녀들을 만나면서 피리위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초등학교 입학 설명회레나타의 딸인 아마벨라가 제인의 아들인 지기가 자신의 목을 졸랐다고 하며, 시작부터 불안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퀴즈대회의 살인 사건이 있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되짚어가면서 보여준다. 중간 중간 학부모들과 학교 관계자들의 기자에게 전하는 인터뷰 내용들이 함께 전해지면서 사건에 대한 실마리들을 풀어간다.

여기서 다시금 저자가 이야기를 엮어 가는 방식에 감탄하게 되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섬세하게 사건을 향해 나아가는 일상적인 모습들이 궁금증을 자아내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소한 사건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 이기심, 마음의 상처들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작가의 다음 작품까지도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작품으로, 누구나에게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