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양장)
레베카 크누스 지음, 강창래 옮김 / 알마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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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두께는 상상 외로 어마어마하다.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완독하리라 마음먹은 뒤에도 다소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라는 책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책 내용 또한 금세 읽혀 질만큼 쉬운 것 역시 아니다. 어쩐지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정치적인 색채가 뚜렷해 보여 이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사람 역시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뒤에 붙은 책이라는 글자에 반가운 기운 역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 중에는 역시나 책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비단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나는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혹은 그들의 사상이나 이상적인 면보다는 도대체 무엇이 귀중한 책을 학살시킬 정도로 대단했던 것인가에 대해 궁금증을 품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아끼고 소중히 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 주변의 지인 중에는 책의 겉표지마저 상하는 것이 싫어 손수 커버를 만들어 씌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이 구겨지는 것이 싫어 책을 보는 순간에도 책을 조심히 다루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책에 대한 애정은 여러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책을 불태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외려 책 욕심이 많은 내게는 수많은 책들이 활활 타오르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할 뿐이었다.



이 책은 1장에서 3장까지는 libricide, 즉 책의 학살을 비롯해 각종 이론적인 설명을 해주고 있으며, 4장부터 8장까지는 다섯 가지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는 나치가 유럽에서,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에서,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마오주의자들이 중국 문화혁명기에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에서 책을 학살한 사건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9장에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결론을 도출한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잘 배치되어 있다. 역자의 서문에서 역자는 4장에서 8장까지의 사건부분을 먼저 읽고 1장에서 3장까지의 이론부분들로 남은 공백을 채우고 마지막으로 9장의 결론을 읽는 방법도 괜찮을 것이라 제안한다. 난 이런 친절한 제안에 적극 동의를 표했고, 그렇게 읽는 방향을 맞춰갔다. 역자의 서문은 처음 이 두꺼운 책을 받아들었을 때 느꼈던 두려움 내지는 걱정을 다소 덜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책 내용에 접어들기 전 편안한 마음을 느끼게 해주었고, 이 때문에 다소 안도감마저 들었다.



20세기 엄청난 책 파괴. 책은 과거를 비춰주고, 조명해주기 때문에 정치적인 색채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서로 상관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책의 학살은 불가피하며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책의 학살은 빈번하게 이루어져 왔고, 이는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에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고대에는 대부분 종교적인 이유가 상당수를 차지했는데, 이는 고대 정치에는 종교가 분리되어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종교적인 이유가 정치적인 이유였고 정치적인 이유가 종교적인 이유였던 것이다. 고대 책 학살의 내용을 살펴보면, 왕권이 바뀌고 새로운 체제가 도입되면 기존의 책은 불태워져야 했고, 또는 우민정책의 일환으로 백성을 교묘하게 다스리기 위해 책을 불태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또한 책을 불태우는 자들 가운데는 무조건적으로 책을 파괴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책을 불태움으로 해서 찬양의식을 드러내는 독특한 경우도 있었다.



각종 사상과 이념의 대립, 혹은 자신들의 관념을 위해 저질러야 했던 책의 학살은 과연 타당한 일일까, 아니면 부정하다고 손가락질 받아야 마땅한 일일까. 아무쪼록 현재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의 부정한 것도 과거의 사상이나 배경으로 해석해야 할 것도 없다. 바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후대로 물려줘야 하는 소중한 자산이 책이다. 책만큼 우리의 많은 지식을 대변해주고, 우리의 삶 그대로를 이야기해주는 것도 없다. 다음 세대에게 고스란히 물려줘야 하는 귀중한 것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더 이상의 책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여러모로 생각의 깊이를 넓혀주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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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
김의담 글, 남수진.조서연 그림 / 글로벌콘텐츠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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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의 각기 다른 특색과 매력을 담은 감성과 함께하는 시간은 내내 설렜고,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한 여자는 글로 자신의 감성을 이야기했고, 두 여자는 그림으로 자신의 감성을 표현했다. 그 중 유독 내 시선을 사로잡은 쪽은 그림이다. 여러 다양한 여자들의 얼굴을 표현한 그림들은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아름다웠고, 독특했다. 특히나 평소 얼굴에 대한 그림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던 터라 더욱이 많은 관심을 쏟게 되었다. 그림 속 그녀들의 시선은 늘 다른 무언가를 내게 이야기하는 듯 했다. 때론 즐거워 보이기도 했고, 때론 슬픔에 사무쳐 어두운 기색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그녀들의 시선과 마주했고, 그때마다 그녀들의 감성과 내 감성이 교차하는 듯한 느낌에 묘하게도 감성이 풍족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일곤 했다.  


이 책은 1부: 상처, 2부: 이해, 3부: 성숙으로 이루어져있다. 상처에 담긴 글들이 유독 내게 공감을 많이 불러일으켰다. 어머니의 뒷모습이랄지, 내 마음 속 상처의 흔적이랄지, 아니면 미래의 불확실함에 대한 투정이나 꿈에 대한 욕심 혹은 추구하고자 하는 열정의 모호함 때문에 고통 받는 모습이랄지, 사랑의 쓴 단면이랄지…. 잊고 지냈던 참 다양했던 내 과거의 기억들에 대해서도 한 번쯤 다시 꺼내어볼 시간적 여유를 만들어 주었고, 또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혹은 해야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깨달음도 주었다.  


여기서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가슴 두근거려 뛰쳐나가고 싶은 꿈은 무엇입니까?, 누가 뭐라 해도 달려가고 싶은 꿈이 무엇입니까?)”라고 내게 질문한다. 예전 같았으면 서슴지 않고 당당하게 내 미래에 대한 목표나 꿈을 끝도 없이 나열했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전혀 그러하지 않다. 문득 내 가장 친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고작 몇 년 전만 해도 그 친구에겐 다양한 꿈이 있었다. 얼른 대학을 졸업해 하고자 하는 목표! 하지만 이젠 그렇게 녹록찮은 현실을 맛본 뒤로는 점차 모멸감을 느낀 듯 했다. 때문인지 누군가 그 친구에게 “너는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그 친구는 늘 멍한 표정을 짓곤 한다. 아무런 말이 없이. 꿈을 잃는다는 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일인가. 꿈은 늘 내가 나아갈 수 있는 버팀이 되고, 동기부여가 되어주는 것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꿈이 없으면, 더 이상 내가 나아갈 곳은 없는 것이다. 그저 현재 그 자리에 안주해도 좋다. 꿈이 없는 나약하고 가여운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수록 현실과 타협해가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우면서도, 그것이 내심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자 인생이라 치부해버릴 때면 스스로가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어진다. 분명 내 꿈은 이게 아닌데…. 그녀들의 감성과 함께하는 내내 나는 어쩌면 다시금 날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두려움도, 겁도, 현실도피도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여겼다.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인생에 나아갈 목적지가 있다는 것, 그것만큼 가슴 들뜨고 설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다시금 예전 품었던 그 열정으로 꿈에 도전해보려 한다. 늘 상상과 몽상의 경계에서 많은 것을 꿈꾸었던 어린 시절, 그때의 그 아름다웠던 두근거림을 난 여전히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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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사람들
아리안 부아 지음, 정기헌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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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늘 내겐 익숙지 않은 것이었고, 그것은 나를 포함한 내 측근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늘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는 것이 죽음이라지만, 어쨌거나 나는 어느 한 군데 아프지 않은데다 젊은 나이인데 그것이 실질적으로 내게 감흥을 줄 수 있느냐는 거다. (갑작스런 사고는 늘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제외한다.) 또한 내 형제들과 부모님들에 대한 죽음 역시도 마찬가지다. 사실 최근에는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다. 만약 우리 가족 중 누구 하나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면… 하고 말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고 아파오는 것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죽음에 대해 느꼈던 기분 나쁜 감정 또한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그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스무 살, 어린 청년 ‘드니’의 죽음. 피에르와 로라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으로, 디안에게는 사랑하는 동생의 죽음으로, 알렉상드로에게는 사랑하는 형에 대한 죽음으로, 친구들에게는 함께했던 추억을 빼앗기는 죽음으로… 드니의 죽음은 드니의 관계 선상에 따라 각기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른 유형을 선보이게 된다. 말 그대로 죽은 자 다음에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은 저 마다의 방식과 모습으로 보여 지게 되는 것이다. 슬픔을 이겨내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의 모습은 그 만큼 눈물겨웠고, 힘겨워보였다.



피에르는 어린 대학생 여자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익숙하게 거짓말을 하고 그 기분을 만끽하는 것으로 슬픔을 치유하고자 한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에게 자식과 부인은 없고,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그녀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로라는 백화점 등 다양한 곳에서 대범하게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스릴을 만끽하며 삶의 활력을 느끼려 한다. 디안은 늘 새로운 낯선 남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며 슬픔을 잊으려 하며, 점점 퇴락해져 간다. 알렉상드로는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는 등 적응을 하지 못해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께 불려가는 일이 잦아졌다. 이처럼 한 사람이 남기고 간 빈자리는 남은 사람들에게 큰 변화를 불러왔다. ‘죽음’이라는 것이 그러하듯, 변화는 절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제각기 슬픔을 추스르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감정과 도무지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정에서 비롯된 대체일 뿐이다.



문득 한 가족의 무미건조한 일상과 한 사람의 부재로 인한 어둑한 변화를 지켜보면서, 만약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그런 일을 겪는 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슬픔을 이겨내려 노력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디안처럼 방탕한 삶을 통해 현실을 부정하려고 노력할까. 아니면, 그 슬픔을 만끽하며 한껏 우울하고 슬픈 사람으로 전락해 버릴까. 그 어느 것도 정당하지 못하고, 올바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이처럼 버거운 것이다. 그것이 가까운 가족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말이다.



글 속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다른 타인의 죽음이라면 그저 그 상황에 놓인 사람의 슬픔을 위로하며, 적어도 그것이 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이토록 가슴 아프게 슬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온전히 타인의 죽음일 뿐, 내게 뼈저리게 깊게 파고드는 죽음과는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토록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그 사람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가슴 속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한, 그런 추억과 기억은 죽을 때까지 내내 내 속에 자리한 채 아름답게 빛날 것인데, 그 추억 속에 함께 빛나야 할 주인공이 사라지고 없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말이다. 그것은 그 추억마저 없었던 허구에 지나지 않게 만들고 애초에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남겨진 사람들… 죽음은 이토록이나 사람을 슬프고 아프게 만든다. 늘 사람은 죽음과의 연장선상에 머무르며, 결국에 죽음이라는 도착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존재다. 좀 더 죽음을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그것은 사람의 감정이 허락되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책은 본질적인 죽음과, 죽는 이,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모든 것에 짙은 생각과 슬픔을 덧붙여 볼 수 있는 깊이 있는 여운이 담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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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 2012 마야력부터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가 케이시까지
실비아 브라운 지음, 노혜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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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 누구나 한 번쯤 세계가 멸망하고, 종말이 도래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 상상을 자주 하곤 한다. 그래서 인지 유달리 ‘투마로우’와 같은 재난 혹은 재앙이라고 불릴 법한 영화에 집중을 하게 되고, 천재지변과도 같은 사건이 터지면 더욱 신경을 예민하게 세우곤 했던 것이다. 그것이 굳이 종말을 불러일으키는 시발점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이상하리만치 갑작스런 재앙은 사람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는 동시에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것이었다.



이 시대 최고의 예언가이자 영매로 유명한 실비아 브라운의 <종말론>은 이 시기 우리가 궁금해 하는 내용이나, 의문점 혹은 불안과 혼돈을 차례로 정리해주고 있다. 유명한 2012년 마야력부터 익히 들어왔던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가 케이시까지. 그리고 각 종교에서 제시되고 있는 종말론과 예언가들로부터 전해지는 종말론, 그리고 문명에서 이루어졌던 종말론과 자신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종말론 등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오던 종말론의 총체적인 집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부터 온 몸을 감싸고도는 호기심과 궁금증, 혹은 알 수 없는 불안함은 읽는 내내 지속되었다. 사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정도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나 다소 힘이 빠지는 내용들 때문인지 지루한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내용들이었다.



최근 추운 날씨가 이어지고, 갑작스런 폭설이 발생하는가 하면 전 세계적으로 위험한 지진이 발생하는 등 갑작스런 천재지변으로 종말론에 대한 이야기가 한층 더 대두되는 것 같다. 종말론에 대해 무심, 혹은 어느 정도 절대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나의 한 지인은 “어차피 2012년이면 끝나는데, 인생 좀 즐겁게 살자.”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네기도 하며, 갑작스런 천재지변을 본 뒤로는 “정말 꼭 세상이 종말 할 것 같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건네는 이도 있다. 사실 종말론에 대한 가설 또한 정해진 기준이 모호하고, 확연한 결과물이 내보여지지 않는 한 누구나 쉽사리 믿기 힘들며, 그러한 종말론에 묶인 채 인생을 허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정말로 인생이 2년 후 종말을 맞이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지금 당장, 열심히 힘들여 일할 사람이 어디 있으며, 고생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죽기 전 해보고 싶었던 일이나 하고자 하는 일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거나, 그 동안 가슴앓이를 해왔던 짝사랑하는 이에게 고백을 하거나, 어찌됐든 2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다들 무언가를 하려 안달이 날 것이다. 하지만 당장 우리에게 종말은 도래하지 않았고, 현재 제기 된 종말론 중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정당화된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주어진 인생에 최선을 다해 사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은 없는 것이다. 어느 순간, 정말 종말이 도래할지는 알 수 없으나, 여전히 제기되어 오는 종말론을 어쩐지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러한 종말론을 두려움이나 공포로 인식하기보다 외려 현재의 삶을 더 소중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로 인식한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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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hotography Book 포토북 파이든 아트북 3
PHIDON 지음, 안혜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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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우리에게 사진은 더 이상 전문가만이 찍는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아마추어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전문가용 카메라를 어깨에 짊어진 사람들을 많이 마주칠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멋스러운 가게와 마주칠 때면 손쉽게 카메라를 들이밀어 담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언젠가부터 모든 휴대폰에는 카메라가 장착되었고, 이는 기존의 카메라 못지않은 성능과 화질을 자랑했다. 각종 홈페이지나 카페, 블로그를 통해 자신이 찍은 사진을 내거는 프로 수준급의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우리에게 사진은, 더 이상 우러러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함께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굉장한 두께를 자랑하는 은 받자마자 그 묵직함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남긴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실로 유쾌한 일이었다. 마치 전시회를 방문해 작품을 감상하듯 다양한 작품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간단해 보이는 사진이라도, 그들이 담아 놓은 구도와 미묘한 소품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많은 사진들을 보며 다시금 사진의 구도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이 안에 담겨진 사진에는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에디 애덤스 <거리에서 처형당하는 베트콩 포로>처럼 미국사회를 풍자하며, 당시 사회에 대한 이면을 예리하고도 날카롭게 풍자하는 사진들도 있었고, 다이안 아버스 <센크럴파크에서 수류탄을 들고 있는 아이, 뉴욕>처럼 평화로운 공원을 배경으로 서 있는 아이와 한 손에 들린 수류탄과 아이의 기괴하고도 익살스런 표정의 대비는 실로 사람의 시선을 장악하고 있었다. 또한 닐 암스트롱 <달에 선 버즈 알드린>의 사진 같은 경우에는 달을 밟고 있는 알드린의 모습을 통해 중요하게 기억 될 사건을 후에라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이 사진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드미트리 발테르만츠 <케르치, 크림 반도(재난)> 같은 경우에는 크림 반도를 침공했던 독일이 퇴각하며 저지른 민간인 대량학살의 사진이 여실히 드러났다. 사진 한 가득 사방에 늘어져 있는 시체들과 그들을 바라보며 오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 동안 그 사진 속에 머무르게 만들었다.



미카 바르-앙 <견고한 감옥, 베이리드>는 둘씩 짝지어 걸어가고 있는 죄수들의 건조하고 공허한 모습과 함께 그들의 머리 위로 쭉 늘어선 철조망이 감옥의 견고함과 메마른 구석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바타굴리아 <판사 체사레 테라노바의 죽음>과 같은 사진 또한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죽은 이의 사진은 다른 사진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1980년 초 바타굴리아의 사진들은 마피아들로 인한 살인사건을 담아 폭로했다고 하는데, 이처럼 사진의 용도는 그저 바라보고 감상하는 것 말고도 풍부한 것이었다.



그 밖에 간디, 마오쩌둥, 마릴린 먼로, 피카소, 마돈나, 케이트 모스와 같은 유명 인사의 사진들도 많이 있었다. 또한 앤디워홀과 같은 자화상을 담아 낸 사진작가들도 많았다. 그 중 귄터 브루스 <자화상>의 경우가 상당히 좋았다. 행위예술로써 자신의 얼굴 위로 덮은 흰 반죽과 정수리에서부터 목까지의 꿰맨 자국을 그려 넣어 삶에 대한, 그리고 그 무게에 대한 느낌을 잘 살려낸 것 같다. 내게 여러모로 새로운 감각과 신선함을 안겨 준 사진들은 이처럼 독특하면서도 다소 기괴해 보일 수 있는 사진들이었다. 이런 것들은 진부한 구석이 없었고, 새로운 상상력을 안겨주며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었다.



그 밖에 데이비트 더블릿 <와이어 산호 숲의 잠수부와 갈동무리들>이나 악셀 휘테 <푸리>와 같이 자연의 웅장함을 담아 낸 사진도 많이 있었다. 특히나 데이비트 더블릿의 사진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자연의 신비로움을 여지없이 보여준 작품이었다. 자연이나 풍경에 대한 사진은 어떤 각도로 어떤 의도를 가져 찍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노먼 파킨슨 <뉴욕, 뉴욕>과 같이 젊은 커플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뉴욕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주는 사진들도 많았다. 이처럼 당시의 시대상을 느낄 수 있고, 사회의 이면이나 현실 그대로를 담아내는 것 또한 사진의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마이클 웰스 <손과 손> 같은 경우도 선교사의 손 위에 올려 진 바싹 마르고 작디작은 우간다 어린이의 손은 마치 사람의 손이 아닌 것 같은 동시에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진은 이렇게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울림과 감정의 호소력을 자극시켜줄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보느냐에 따라서도 그 느낌은 달라질 것이며 같은 장소나 주제라 할지라도 누가 어디서 어떤 구도로 찍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이 사진일 것이다. 정해진 프레임 안에 자신이 정한 구도를 담아내는 것만큼 어렵고도 놀라운 작업은 없는 것 같다. 그 만큼 그들이 담아내는 것은 정해진 그 구도가 아닌 그 구도 안에서 살아 넘치는 인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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