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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강물
마광수 지음 / 책마루 / 2011년 9월
평점 :
가장 신기하게 생각되는 것은, 사람들 모두 반드시 죽을 운명을 갖고서 살아가면서도, 막상 죽음 자체에는 거의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죽음을 두려워하며 큰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면서 삶 자체를 증오하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늘 억울해했다. 철저한 허무주의자의 인생관이었다. …중략… 아무튼 인간은 죽으려고 태어났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자연법칙이다. 그리고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끝이다. 내세고 천당이고 지옥이고 윤회고, 다 없다. 죽고 나면 ‘말짱 꽝’인 것이다. -11~28쪽 ‘죽음에 대하여’ 중에서
세월과 강물.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또 흐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간다. 그리고 계속해서 흘러갈 것이다.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말이다. 마광수 <세월과 강물>이라는 장편 소설도 어쩌면 강물처럼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 듯했다. 때론 지독한 고독함이 흐르고, 때론 꽉 막힌 듯한 허망함이 흐르고, 때론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이 흐른다. 그의 작품에 모든 인생이 고스란히 흐르고 있었다. 하나의 강물이 되어서.
그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 만나보는 작품이라 반신반의했던 것이 사실이다. 꽤나 자극적이고 독특할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것이 신선하게 다가올지에 대해서는 의문점만 제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꽤나 놀랍게 다가왔다. 심한 동질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다소 껄끄러운 부분에 있어서는 인상을 쓰기도 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처음 등장하는 죽음에 대한 주인공의 시점이 놀라울 정도로 공감되었다. 나 역시 아무런 종교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 종교를 강요할 때면 진저리칠 만큼 혐오스러웠다. 더욱이 믿지 않으면 죽어서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소리를 질러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무교와 죽음에 대한 관점이 좋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주위에 죽음이 도사리진 않았었다. 놀라울 만큼 20살 중반이 될 때까지 장례식장이라고는 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죽음을 가까이에서 마주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늘 죽음을 동떨어져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삶과 죽음이 연장선에, 그것도 한 끝 차이라는 것을 늘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두려워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가와 간혹 슬프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모두 너무나 적나라하고 솔직해 그것이 더 좋았다. 늘 예의를 갖춰 있는 척 하는 글들에 비해, 있는 그대로를 까발린 것이 마음에 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늘 겉으로는 아닌 척 그럴싸한 표정과 몸짓으로 감추고 있지만, 그것은 다 가식이었다. 다 벗어버리고 진실 되게 자신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이 좋았다. 과연 이 글들이 저자의 이야기인지, 혹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인지 혼란스러워지는 것도 잠시다. 그저 강물이 흐르듯, 인생의 단면을 여실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도 세월은 계속해서 흐르고 또 흐른다. 그 흐르는 세월 속에서 좀 더 솔직하게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