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 - 최갑수 여행에세이 1998~2012
최갑수 지음 / 상상출판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018 그러고 보니 가난한 이유
나는 참 많이 가지고 있는데
나는 왜 가난할까.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026 반복일 뿐이야
당신 앞에 세월을 되돌릴 수 있는 버튼과
빨리 가게 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
당신은 어느 버튼을 누르고 싶은지…
감각적인 사진과 감각적인 글귀. 아련한 감성을 건드리는 표지와 ‘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는 감성적인 제목까지. 이 책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무덤덤하고 건조한 일상에 지쳐 꽤나 무기력하고 못된 심보가 된 요즘, 이 책으로 떨리는 감정을 느낀다.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그의 글에 공감하고, 여러 번 곱씹어 보면서 숨겨 놓은 감정이 뭉텅이로 쏟아진다.
‘#004 어느 오후 4시의 머뭇거림’을 읽으며 하얗고 뽀얀 둥글고 큼지막한 구름이 맑은 푸른 빛 하늘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하늘을 떠올린다. 꼭 햇살이 따스한 날에 느낄 기분 좋은 나른함도 느낀다. 오후 4시는 내게 그렇다. 굉장히 나른하고 눈물겨울 정도로 아름다운 날. 그럴 때면 꼭 그리움과 허전함이 동시에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기분 좋은 감정 중 하나다. 어쩐지 끝없이 이어진 길을 거닐고 싶어지고, 잠시 멈춰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상에 젖고 싶은 시간이다. 그 아련한 감정이 그대로 녹아든 글이었다.
‘여행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의 글귀가 인상적이다. 여행을 떠나는 일은 각양각색이다. 자신을 찾기 위해서, 누군가를 잊기 위해서, 새로운 인생을 위해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어서… 그런 수많은 이유들 속에 모두 담겨 있었다. 주어진 시간이 있다는 것. 그것만큼 축복이 어디 있을까. 여행지 그 속에서 보고 듣고 담을 수 있다는 시간. 그래,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래서 여행은 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나온 세월을 펼쳐보며, 앞으로의 미래를 가늠하며. 여행은 시간에 녹아들었다.
‘#044 어쩌면 사랑은 가장 아름다운 오해’ 참 맞는 말이다. 내가 그를 이해하는 순간, 그가 나를 이해하는 순간 사랑은 사라진다. 사실 난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고, 사실 당신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헤어지고 나서야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늘 사랑은 상상을 만든다. 그럴싸한 모습에 내 멋대로 그 사람을 끼워 맞춘다. 내게 그렇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그렇다고 확인시켜 준 것도 아닌데, 그럴 것이라 단정하고 그 모습에 가슴이 뛰고 설렌다. 하지만 정작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흐를 쯤이면, 그럴싸한 공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자취를 감춘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 슬퍼하고 지쳐간다. 그리고 현실은 이별이 된다. 어쩌면 늘 사랑은 한결 같다.
그의 많은 이야기들 중 가장 공감을 한 글은 ‘#026 반복일 뿐이야’였다. 세월을 되돌릴 수 있는 버튼과 빨리 가게 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나 역시 늘 세월을 되돌리는 버튼을 꿈꿔왔다. 다시 초등학생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아니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고등학생의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지금에야 후회하는 그 모든 것들을 그때로 돌아가면 이룰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상상 속 모습은 늘 한결 같이 완벽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완벽해 후회와 미련은 더 없이 커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어차피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반복될 뿐이라는 것을. 후회와 미련으로 지나간 과거를 얼룩질 것이 아니라 지금에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는 것을. 지금 내겐 시간이 있고, 꿈이 있고, 남은 인생이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요즘 내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글이다. 다시 꿈을 꾸고 남은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한 이 책. 지금 이 순간 함께할 수 있어 더 없이 소중하다. 소중한 사람에게 꼭 건네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