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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눈물이 나 - 아직 삶의 지향점을 찾아 헤매는 그녀들을 위한 감성 에세이
이애경 지음 / 시공사 / 2011년 11월
평점 :
살다보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로 가야 할 때가 있다. 길을 찾다 갔던 길을 되돌아오기도, 한참을 빙빙 돌아가기도 한다. 때론 잠시 길을 잃고 방황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것일 뿐 언젠가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하고야 만다. 내비게이션처럼 특별한 안내자가 없더라도 말이다. 처음에는 길을 헤매다 막막함에 지쳐버릴지 몰라도, 한 번 가본 길은 어느새 익숙해져 결국 내가 아는 길이 된다.
아는 길 위에서 비로소 나는 자유롭다. …진정한 자유함은 낯선 길로 들어서는 나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늘 새로운 길을 가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56~57쪽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느지막하게 일어나, 창가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에 잠시 인상을 찌푸린다. 꼭 닫아 두었던 창문을 반쯤 열자, 미지근하면서도 상쾌한 바람이 집안으로 들어온다. 가만히 열린 창가를 통해 익숙한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나른해진다. 방금 전 긴 잠에서 깨어났는데도,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어진다. 나른하면서도 정적인 일요일 오후였다. 열어 둔 창밖으로,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와 모르는 타인들의 음성이 들린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데… 툭하고 울컥 감정이 일렁인다. 밑도 끝도 없이 눈물이 고인다. 빠르게 치밀어 오르는 알 수 없는 감정은 좀처럼 가실 생각을 않는다. 대체 어디에서 연유한 감정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햇살이 눈부셔서? 일주일의 피곤이 가시질 않아서? 지나가는 소음들이 신경 쓰여서? …아니다. 그 어떤 이유를 맞춰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이유는… ‘그냥’이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그냥 슬프기 시작했다.
연유를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일은 허다하다. TV 쇼프로를 보며 한껏 웃어버리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오는 알 수 없는 허무함이나, 길을 걷다 문득 소용돌이치는 감정이나, 햇살이 들어오는 카페에 앉아 두근대는 감정의 설렘까지도. 눈물이 겨울 정도로 늘 감정은 제멋대로 움직인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감정처럼 어느 순간, 나는 갈 길을 잃어버렸다. 이 길은 내가 가려고 마음먹었던 길이 아니었는데…. 이 길을 걷기 위해 이제껏 숨차게 달려온 것이 아니었는데…. 이제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니, 언제부터인가 나는 모르는 길에 들어서 있었다. 언제부터 잘 못 들어선 것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꽤나 많은 길을 걸어온 모양이다. 여기는 어디일까.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문득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떤 말로도 정의내릴 수 없는 이런 감정들… 당신 역시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냥 눈물이 나>는, 따뜻하고 아련한 표지만큼이나 감정을 콕콕 건드리는 묘한 떨림이 있는 책이었다. 처음엔 아무런 감정 없이 한 장, 한 장을 넘기는데 어느 순간 나는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웃고,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때론 위로를 받았고 때론 새로운 감정과 간과하고 있었던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편안하면서도 감정의 깊이가 있어 읽는 내내 묘한 기분이었다. 여전히 인생은 막연하고 두렵고, 지치고 슬프기만 한데… 이 책 속의 글들을 읽으며 어쩌면, 눈물겹도록 지쳤던 인생을 새롭게 돌아보게 되었다. 책 뒤표지에 담긴 GQ KOREA 편집장 이충걸님의 평이 고스란히 내 마음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 책은, 가까운 지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한 번쯤 권하고 싶은 이야기다. 그런데 이 책을 무어라 말로 정의하려니 애매하다. 그래, 그냥. 거창한 이유는 필요 없다. 그저 삶이 지치고 힘겨울 때 한 번쯤, 쉬어가고 싶어질 때, 이 책과 마음의 휴식과 앞으로의 재충전의 시간을 함께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