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 강설 - 붓다의 정통 수행법에서 본 선의 실체
무산본각 지음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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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거리에서 촛불이 꺼지지 않는다. 마치 프랑스의 1968년 같다. 물론 다른 점이 많다. 한국의 촛불은 프랑스보다 훨씬 온건하다. 오히려 '정부와 국가'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빨리 '폭력화'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그럼 '진압'하면 될까? 틀렸다. 한국의 촛불은 이미 '진압'같은 개념을 넘어섰다. '개념'을 넘어섰다는 바로 이 지점! 프랑스의 68혁명이 그러했다. 프랑스인들 '아버지'같은 드골의 통치에 순응하면서 반대했다. 이제 '자식들'이 다 자라서 '아버지'에게 독립하고 싶다! 그래서 드골은 의회해산 총선실시 그리고 '복귀'했지만 그 다음에 권좌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드골체제'는 해소되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로'의 유산은 지금까지 세계가 평화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오랜 세월 '영미'를 추수하며 자국을 '전쟁터'로 내주는 것 그만두고 독일하고 '평화공생'으로 나가면서부터. 드골과 아데나워가 한 일이었다. 그 드골도 세월은 어쩌지 못했던 것이다.

68정신의 기본은 모든 권위와 권력의 해체다. 여기에 좌우가 없다. 그래서 지금 촛불은 안꺼질 것이다. '권위와 권력'이 해체되길 지향하므로. 이 놀라운 변화는 사실, '대박'의 꿈을 안겨줄 것이라는 헛된 망상속에 등장한 이명박 정부가 오히려 '과거'로 퇴행하면서 '낡은' 권위는 물론 '백골단'과 같은 권력까지 살리려드는 방향으로 기울면서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이 '포스트모던' 혁명! 엉뚱하지만 한국불교에도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각묵스님이 이 '작업'의 맨 앞에 있다. 남방에서 공부하고 온 스님들이 다 그렇다. 허나, '오직' 남방만 기울어 있는 경우는 그 지역의 '문화적 한계'에서 빚어진 폐단까지 다 가지고 오니 또 문제이다. 그래서 남북방 모두 아우르는 수행자가 필요하다. 각묵스님과 대림스님이 그러했다. 각묵스님은 이미 '한소식'을 한 분이라 했다. 허나 그 '한소식'을 통렬히 반성하면서 글자 그대로 '해체'한 이후 '재구성'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남방 아비담마의 장점을 '북방'의 관점에서 적절히 소화하는 중이다.

이런 분이 또 하나 있으니 그분을 '무산본각'이라고 한다. 테헤란에서 일하다가 '이란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존재에 의문'을 품고 귀국하셔서 '출가'하신 다음 '한소식'까지 나가 가셨다 한다. '야반 삼경에 문고리 잡아보라' 뭐 이 화두를 타파하셨다고 한다. 허나 진정한 깨달음의 경계가 아님을 아시고 다시금 발심 하셔서 '위빠사나'를 수행하셨다고. 그리하여 이분이 깨달음에 관한 종합적 정리를 한 두 책을 출간하셨다. 이 '무문관 강설'은 그 두 책보다 먼저 나왔다.

'무문관 강설'은 그러니까 '북방불교'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그 정수를 잘 짚어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북방불교의 '문제'란 무엇인가? 사실 이것은 '인간'에게 내재된 '개념화'의 문제라고 하는게 맞다. 꼭 북방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념화'가 체계를 갖추면 '이념'이 된다. 이념이 사람들이 무리속에서 '제도'가 되고 '작동'하게 되면 이른 바 '거대담론'이 된다. '거대담론'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북방불교는 거대담론에 가깝다. 왜냐하면 사실, 초기경전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던 '운율에 맞춘 시가'형식으로 불교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짧은 식견으로 이는 '직관'과 '신앙'에 기초한 일종의 '믿음불교' 즉 '신앙불교'라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초기불교는 거의 '과학자' 또는 '자연사학자' 자질 을 갖춘 사람들이 수행하고 정리했다면, 당시에도 이미 부처님이 '우다나'로 노래하신 것에서 알 수 있듯, '문학적' 자질 갖춘 사람들은 그 표현법을 달리했고 또 그러고 싶어했다. 그 결과 대승이 탄생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적 상상력'이 구축한 불교. 틀렸다 맞다의 문제는 아니다. 시기와 조건의 문제일 뿐. 하지만 그래도 핵심은 있다. 불교는 러셀과 아인슈타인도 찬탄했는데, 간단히, '신앙'과 '믿음'에 한정된 가르침이 아니라서 그렇다. 내게는 이 두 사람의 유럽 학자들의 얘기가 '핵심'이라고 보인다. 그렇다고 '과학적 분석적 불교'가 마냥 정당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과학적 분석적 불교'와 '문학적 직관적 불교'는 부처님 가르침속에 모두 있었고 가령 사리불 존자는 '과학적 분석적 불교'에 가까운 '법의 대장군'이었으니 초기불교가 그러했던 것은 '사리불'이라는 탁월한 아비담마 분석의 대가 덕분이라 할 수도 있다. 허나 앞에서 말했듯, 모든 '담론'은 또 '이념'이 되고, 이념은 더깨가 되어 사람을 또 구속해버린다. 불교는 해탈에 있건만. 그래서 다음의 문제가 나온다. 신앙불교 말이다.

어째서 '신앙불교'가 되었을까? 간단히, 이념화라는 것 때문이다. 초기 부처님의 가르침이 '교단'을 얻고 체계화 되고 제도화 되면서 당연히 '문제'가 벌어질 밖에. 왜냐하면 부처님 스스로도 그러하셨지만 핵심은 '출가'이다. 그런데 제도화가 과도해지면 '출가'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된다. 사리불 존자의 아비담마가 '수행'을 위한 자양이 아니라 '학문'의 대상이 될때 문제가 된 것이다. 물론 꼭 아비담마만은 아니다.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중국에 들어온 대승경전은 그 '문학적 성격'때문에 중국인에게 잘 맞았던 것이지만 그런 이유로 '논의'가 무성해지면서 폐단이 생겼다. 이것을 '지양'하는 운동이 선불교라면 틀린 것일까? 하여튼 무엇이든 제도화 이념화 되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여기 '지원'이 들어오고 더군다나 속세 권력층에서 많은 것을 내줄때 문제가 되었다. 가령 양무제때는 '황제'가 불교를 장려하였기에 사원으로 엄청난 '경제적 잉여'가 투입되었고 '승려'가 된다는 것은 요컨대 아주 '잘먹고 잘사는' 방편에 속했다. 물론 결혼을 못하는 폐단은 있었지만. 그래서 그 양무제가 '달마' 스님에게 한방 야단 맞은 것이다. "아무런 공덕이 없소" 실제로 양무제가 세상을 떠난 이후 '불교탄압'이 진행되었는데 '출가'한 승려를 다시 '입가'시키는 것이었다. 경제가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나.

그래서 참으로 어렵다. 무산본각 이분은 이 지점에서 북방의 '성'에 통렬한 일침을 가한다. 성철스님도 예외가 아니다. '성품'을 본다는 것은 이미 '무엇인가' 있다를 상정하는 것이다. 이는 각묵스님도 마찬가지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뭘 그렇게 또 '개념'을 만드십니까? 그냥 '무아'를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렇게 말한다. 무산본각 이분은 북방의 체계가 글자 그대로 '선' 즉 '선정'에 터해 있다고 해석하여 한걸음 더 나아갔다. '깨들음'을 얻었다는 이것은 알고 봤더니 '선정에 들어갔다'를 뜻하는 것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철스님이 말씀하신 '무념'의 종지를 부정한다. 그게 아니다! 위빠사나는 그것을 넘어선다.

그래서 저자는 중국선에 부정적이다. 스스로 화두를 타파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여겼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위빠사나로 전환한 것처럼 '선정'에 기초하여 세워진 중국선은 한계가 많다는 것. 가령 여래선은 일종의 '요행'에 기댄 체계에 불과하다. 특히 '선'의 문제는 '공안집'이 저작되면서 더 문제가 되었다는 것. 이 공안집이 '문학적 상상력'을 배양하는 일종의 '문제집'처럼 여겨져서, 이것으 통과하는 것이 글자 그대로 새로운 종류의 과거처럼 된 폐단 말이다. '폐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중국의 단하천연 선사는 '과거'보러 가는 길에 길거리 누군가 '심공급제'라는 시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마조도일 스님을 찾아왔다지 않는가? '이미' 마조앞에서 문수보살상을 타고 노는 '선'을 행하여 '천연스럽구나'하는 '법명'까지 얻은 사례였다고 한다. 아무튼 단하천연선사는 한번 선정에 들면 일주일간을 앉아 있었다고 하는데 '북방선'은 이렇듯 '과도한 사마타' 중심이라고 여러 분들이 비판하는데 그 중 한분이 무산본각 이분이고, 이 책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묵스님은 일찌기 금강경의 '상'에 주목하여 이 경의 기본정신이 '해체'에 있음을 밝혔다. 이는 무산본각 이분에게서도 비슷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중국선이 부정적인 것 만은 아니다. 무념에 멈춘다면 위빠사나가 아니기에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철스님도 '사중득활'을 말씀 하셨으니 요컨대 '사마타 선정'에 빠져 있지 말고 화두를 챙겨서 '사중'에서 '득활'하라는 말씀인데 이는 '사선'에서 출정하셔서 '순일하게 마음챙김'을 하신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부처님 말씀과 일치하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사마차 선정'이 그냥 '선정'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면 위빠사나는 선정에서 나와 '사띠'를 증강하고 챙겨야 한다. 그렇게 하여 무명을 '보고' 또 '깨뜨리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초기경전에 설명되어 있다. '화두'를 드는 것은 '선정'에 들어가는 일종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될 수 있지만, '사중득활' 즉 '선정'에서 나와서 사띠를 증강해야 깨달음으로 갈 수 있다. 이 분의 일관된 이야기는 여기에 터해 있다. 그래서 무문관 강설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특히 '피안'으로 가고자 한다면 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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