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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기도의 언어 - 시편을 읽는 40가지 단어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 지음, 이기락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8월
평점 :
시편은 미사 전례의 화답송으로 또 성가의 가사로 노래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저절로 시편의 한 구절을 기도 안에서 떠올릴 때가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몰랐던 사실은 시편의 어휘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40가지 단어는 시편에서 상당히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책에 실린 단어들의 뜻을 기억하며 시편을 읽는다면 시편을 보다 깊이 이해하며 읽을 수 있겠다.
저자는 시편의 제한적 어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바로 기도할 때 독창적이고 우아한 말들을 찾을 것이 아니라 기도의 본질, 즉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의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처음 아이와 기도할 때 아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엄마와 아빠가 먼저 기도하고 아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그런 말 못하는데"하며 기도하기를 주저했다. 엄마, 아빠가 사용한 말이 아이에게는 어렵게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에게 '오늘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아서 즐거웠습니다'라거나 '선물을 받아서 기뻤습니다.'하고 한 문장으로 기도해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후로 아이는 기도 시간에 자신만의 언어로 감사 기도를 드렸다.
책 속에 시편을 읽으며 생길 수 있는 의문점들과 배울 점들을 정리한 부분들 덕분에 시편을 보다 탐구하며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시편을 읽기 전 또는 시편을 읽고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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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어휘의 관점에서 시편집은 매우 독특한 특징을 보이는데, 바로 '반복'이다. 시편 기도의 어휘가 광범위하지는 않아서 같은 단어가 계속 반복되어 사용되는데, 이 사실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기도를 할 때 독창적이고 우아한 말들만 찾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적인 관계의 진실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낱말 그 자체는 대화의 초기 실마리, 통교를 위한 출발점일 뿐 기도의 본질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는데, 그 낱말들이 전제하고 있고 또 심화하도록 도와주기를 원하는 (상호)관계에 있는 것이다.
103) 비록 시편이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좋은 것을 갈망하며 살아가도록 가르친다 하더라도, 시편은 우리가 속한 세상의 거친 현실을 모른 체하지 않으며, 모든 불의한 상황을 거슬러 강한 분노를 매우 장연스럽게 표현한다. 폭력을 묘사하는 표현을 만날 때, 이것을 교의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과연 '내 안에는 폭력적인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가?', '원수들을 용서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스스로 자문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115) 우선 이 세상에는 '원수들'이 있다는 현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민족과 나라, 집단이나 개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 충돌, 다툼은 인간관계가 아직도 가끔 대립과 적대감으로 휩싸여 있음을 상기시킨다. 다음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원수일 수도 있고,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분명 잘못이 항상 상대방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분쟁을 불러일으킬 때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는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수들에 대한 용서를 가르치는 복음적 요구를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만이 지독한 증오의 두터운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4-45)
167) 우리의 기도가 말이 많은 독백이 되지는 않는지 자문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수 있도록 침묵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로 그 순간이 아닌가? 하느님께서는 종종 우리가 회개하도록 초대의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베풀고 우리가 참된 행복의 길을 가기를 원하신다는 점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시편 기도 안에서 던져야 할 진정한 질문은, 우리가 하느님께 올바른 것을 말하고 우리의 삶을 진소랗게 표현하여 전달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매 순간 그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 삶 안에서 어떻게 통합시키는냐이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시편 95,7)
171) 이 책의 아이디어는 시편의 어휘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착안되었다. 40여 개의 낱말은 시편에서 사용된 어휘 가운데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 성경의 기도는 반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노래하고, 하느님의 성실하심 또는 그분의 정의를 끊임없이 재확인한다.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는 기쁨과 언급된 바를 신뢰하고 있음을 되풀이하여 표현한다.
그러므로 시편의 어휘는 일상생활에서 취한 것으로서 참으로 단순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여기에는 난해하거나 엘리트적인 어휘가 없다. 시편에서는 인공적이거나 상상으로 꾸민 언어가 아닌 일상의 낱말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