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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우주에 간 고양이와 죽음의 수프 ㅣ 우주 고양이 2
맥 바넷 지음, 숀 해리스 그림, 이숙희 옮김 / 청어람미디어(나무의말) / 2024년 1월
평점 :

『처음 우주에 간 고양이와 죽음의 수프』 는 나무의말 출판사 <우주 고양이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그래픽 노블 장르라 대사량이 많고 만화의 형식을 갖췄다. 그림책으로 담기엔 서사가 길고 담고자 하는 주제가 깊었을 것이다. 긴 호흡의 그래픽 노블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처음엔 많은 등장인물을 쫓아가기도 쉽지 않았다. 텍스트부터 후딱 읽으려 하는 나~쁜(?) 습관을 벗어나지 못해 수많은 그림을 흘려버리고 먼저 일독을 했다. 그런 어설픈 시도로도 몇 장 안 넘어가 이야기에 빠져들어 달의 여왕 수프에 독을 탄 범인을 나름의 추리로 의심해 가며 책을 읽었다. 범인을 여러 번 바꾸어야 할 만큼 반전이 거듭된다. 결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생기니 이야기의 끝까지 단숨에 읽을 수 밖에 없다.
1권에서 달을 위험에서 구해 영웅이 된 발톱 깎이 로봇이 2권에서 꾸링뿌링(달 과일)을 수확하는 농부가 사연은 2권의 큰 이야기 속의 작은 이야기다. 위험에 처한 토끼를 구하는 이 작은 이야기 속에도 몇 번의 반전이 들어있다. 이게 끝인가 싶으면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고 슬픈 결말이겠군 싶으면 그게 다가 아니다. 누가 봐도 영웅임에 분명한데도 어이없는 죄책감에 휩싸인 발톱 깎기 로봇 로즈를 비롯해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빼곡하다. 여러 가지 복선이 주는 재미가 그래픽 노블에서는 가능하구나 싶었다.
한 번의 완독으로 이 장르에 매력을 느끼고선 천천히 다시 읽었다. 내가 놓친 그림 장면에서 텍스트에 없는 등장인물의 활약상을 찾는 기쁨이 추가되었다. 발톱 깎기 로봇 로즈가 꾸링뿌링을 따기에 얼마나 재능이 딱 들어맞는지는 그림을 봐야 확인할 수 있다. 수확한 사과 꾸링뿌링으로 당나귀를 움직이는 센스도 그림에서만 찾을 수 있다. 드라마의 회상 장면에서 색조가 바뀌듯 장면 장면마다의 특색있는 색조의 변화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두 번째 읽기에서는 숀 해리스 그림 작가의 재치가 선물처럼 와르르 쏟아졌다.
『처음 우주에 간 고양이와 죽음의 수프』 그래픽 노블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은 많은 캐릭터에 그들만의 세계관을 입혀 서사를 끌어가는 것이다. 작가가 캐릭터를 장악하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경지다. 다 읽고 나면 등장인물 각자의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어 보고 싶어진다.
조금만 엿보자면?
‘능력자’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영웅’이라 불리기만 한다면 누구의 편이 되어도 상관없어 배신을 거듭하는 우주선 컴퓨터, 규칙을 사랑해서 ‘달 법전’에 따라 다스리고자 하나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게 즉석에서 법을 만드는 것까지 꺼리지 않으며 자기 스스로가 곧 법이 되고 마는 독재자, 버니스. 입에 음식을 넣었다고, 침을 뱉었다고 경비병들에게 질질 끌려나가는 장면이 펼쳐진다. 이 장면이 낯설지가 않아 씁쓸한 건 나만이 느끼는 건 아닐테다. 즐거운 것에만 매몰되어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상관없는 롤리팝, 피아노 회사 사장 까를로티의 세계관의 독특함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시인이자 화가인 예술가, 사과 속 벌레는 어떤가? 주인공들과 함께 하며 그들에게 감탄을 느낄 때마다 글로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긴다. 자신이 쓰고 그린 작품이니 저자 사인은 잊어서는 안된다. AI가 출처를 알 수조차 없이 수만가지 이야기를 분석해 만든 것과 비교하여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 책의 마지막장에서 worm이라는 저자 사인을 멋지게 하는 사과 벌레를 보며 ‘진정한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자 했음이 느껴졌다.
2권의 매력적인 이야기를 먼저 접했으니 당연스레 1권 『처음 우주에 간 고양이, 피자를 맛보다』가 궁금해졌다. 책방에 가서 1권을 사서 1, 2권을 모두 읽었다. 1권에서 우주 고양이가 ‘언제 피자를 먹을까?’, ‘과연 피자 먹기에 성공할까?’ 를 궁금하게 하더니 2권에서는 책의 시작부터 달의 여왕이 아예 수프, 그것도 독이 든 수프를 먹게 되고 그 해독제를 찾아 떠나게 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진짜 맛있는 피자와 죽음의 수프, 두 가지 음식으로 풀어가는 이야기의 차이를 느껴보는 것도 큰 재미다.
두 가지의 대립은 이뿐이 아니다. 발톱깎기 로봇과 우주선 슈퍼 컴퓨터의 차이가 엄청나다. 이 차이는 둘이 반복해서 하는 말에서도 느껴진다.
“그냥 ‘로즈’라고 불러 주세요.”
- 발톱 깎기 로봇, 로즈4000의 대사
“저를 ‘능력자’라고 불러 주세요.”
- 우주선 슈퍼 컴퓨터의 대사
위의 두 대사만 비교해 봐도 둘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을 AI시대라고 부른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일 것이다. 3500만개 이야기 구조를 분석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 어떤 이야기도 창작(?)해 낼 수 있는 슈퍼 컴퓨터가 얼마나 큰 파괴력을 지닐 수 있는지 경고한다. 다운로드하는 동안의 에피소드로 기계가 지닌 허점의 위험을 알려주기도 한다. 물론 작가는 우리의 발톱깎기 로봇을 통해서도 로봇의 선한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이 둘의 극명한 차이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로봇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렇듯 『처음 우주에 간 고양이와 죽음의 수프』 속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함께 상상 모험을 하고 나면 그 종착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다. 그러기에 이야기는 힘이 세다고 하는 것일테다.

맥 바넷과 숀 해리스, 맥과 숀은 책 뒤에 작가 소개도 따로 하지 않고 함께 썼다. 소개글을 읽으면 그들의 찐 우정을 느낄 수 있다. 최고의 우정상을 받은 찐 친구 둘이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되어 만든 그래픽 노블! 이런 환상적인 호흡의 작품이니 말해 뭐할까?
따뜻한 마음에 엉뚱함을 탑재한 영웅은 매력적이다. 우주 고양이, 달의 여왕, 발톱 깍기 로봇, 이 세 영웅의 매력적인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죽음의 수프를 먹고 난 후 위험한 모험 끝 마지막 순간에 ‘해독제’를 찾아냈을 때의 성취감을 안겨준다. 그러니 권할 수 밖에 없다.
덧 하나.
<나무의 말>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출판사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성은 대표님을 좋아해서라고 하면 좀 그런가? 그러나 사실이다. 나는 출판사의 책은 출판사 대표님과 닮는다고 생각한다. 그림책 속 주인공의 모습이 그림책 작가와 닮듯이 출판사의 선택을 받아 출간되는 책은 출판사 대표를 닮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픽 노블은 내게 진입장벽이 높았으나 나무의말 출판사의 선택이니 이번 기회에 꼭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어떤 출판사를 좋아한다는 건 새로운 취향에의 도전도 가능하게 하나 보다. 나의 새로운 취향, ‘그래픽 노블’ 요거 좋네 ㅎㅎ~
덧 둘.
그래픽 노블 『처음 우주에 간 고양이와 죽음의 수프』 의 탄생 스토리를 들으면 감동이 배가 된다. 코로나로 집에서만 지내던 시절 맥 바넷과 숀 해리스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라이브쇼를 연다. 집에만 머물러야 했던 아이들을 위해 이야기를 만들고 만화를 그렸는데 그 아름다운 두 사람의 콜라보가 그래픽노블 <우주 고양이 시리즈>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산타는 어떻게 굴뚝을 내려갈까?』 등 맥바넷 작가가 낯설지 않다. 나에게도 그렇다. 그럼에도 맥바넷 작가의 선한 의도를 접하게 된 건 바로 『처음 우주에 간 고양이와 죽음의 수프』을 통해서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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