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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백설 공주 ㅣ The 그림책 1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지음, 김시아 옮김 / 한솔수북 / 2024년 2월
평점 :
명작을 재해석하다!! < 아듀 백설공주>
하나. '용기'라는 키워드로 다가온 <아듀, 백설공주>

<아듀, 백설공주> 그림책을 처음 만나게 되면, 보통의 그림책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큰 판형과 하드커버로 된 묵직한 표지에 놀라게 된다. 이어 누두사철 제본의 클래식함과 얇지 않는 책의 두께에 맘을 뺏기게 된다. ‘그림책 너 어디까지 고급스러워져봤니?’ 라는 물음에 도전장을 내봄직하다. 판형의 크기부터 누드사철 제본의 독특한 제본 형식만으로도 한솔수북의 <아듀 백설공주 >출판은 ‘용기’있는 도전이란 생각이 든다. 용기 없이 세상에 내 놓을 수 없는 외형의 책이다.
그렇다면 책 내용은 과연? ‘지금껏 알고 있는 백설공주는 이제 잊어’ 라고 베아트리체 알레마냐는 명작을 재해석하여 작가만의 독특한 이미지와 제목에서부터 ‘아듀~백설공주’ 라며 그동안의 백설공주 이야기에 영원한 작별을 말한다. 용기있는 외침이지 않은가? 이렇게 <아듀, 백설공주>는 ‘용기’라는 키워드로 먼저 다가온 그림책이다.
둘. 백설공주가 아닌 왕비가 들려주는 이야기
익히 알고 있는 백설공주 이야기는 공주의 예쁜 얼굴이 갈등의 시작이며, 그 예쁜 얼굴이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공주의 여성성이 주가 되는 이야기다. 이 익숙한 이야기가 은연 중에 주입해 온 생각은 ‘순종’, ‘아름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내 속에도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백설공주 이야기의 기원을 찾아 원작에 담긴 숨겨진 이야기에 주목한 작가가 있다. 내게 <사라지는 것들>이라는 그림책으로 익숙한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작가다. 작가는 그림형제의 판본에서 그려지고 있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왕비의 죽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주려 하는 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책의 서문에 쓰여진 작가의 글에서 그 깊은 의도가 읽힌다.

‘백설 공주’ 이야기는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를 독일의 그림 형제가 1812년에 처음 썼습니다. 그림 형제의 첫 판본에는 난쟁이들이 웃기거나 사랑스럽지 않고, 왕자의 입맞춤도 없고, 아름다운 결말도 없습니다. 하지만 결혼식에 초대된 손님들 앞에서 백설 공주에 의해 산 채로 화형을 당하는 여왕의 죽임이 폭력적이로 무자비하게 그려집니다. 궁극적으로 저는 이 옛 이야기의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백설 공주와 여왕 중 누가 피해자이고 사형 집행인일까요? 그림 형제 판본에서 말하는 ‘선’은 어디에 있나요?
- 베아트리체 알레마냐의 서문 중에서
작가는 이 유명한 명작을 재해석하기 위해 <아듀, 백설공주>에서 왕비를 화자로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자연스레 왕비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들여다 보게 된다.
디즈니(?) 스러운 이미지에 익숙한 우리에게 다소 음울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한 이미지는 왕비의 욕망과 고통에 감정을 이입해보라고 권유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작가가 독자를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회화를 맘껏 펼친 느낌이 든다. 사냥꾼이 가져온 멧돼지의 간과 폐를 백설 공주의 간과 폐인 줄 알고 왕비가 먹는 장면을 보자. 8칸으로 나뉘어진 그림의 흐름 끝에 실사 장면을 이용한 표현이 있다. 간과 폐를 먹으며 점점 더 실제의 인간이 되어가는 듯한 모습을 이렇게 기발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다. 그녀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광기가 느껴진다.

셋. 우리는 무엇과 작별해야 하는가?
처음부터 주어진 운명의 길을 가는 주인공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가는 주인공, 지금까지 우리는 순종적인 여성성을 주입받아 자기 결정권이라곤 전혀 없이 운명을 따르는 백설 공주의 편에 서 있지 않았는가? <아듀, 백설공주>에서는 이제 시선을 돌려 왕비를 보라 한다. '질투심 많은 계모'가 아닌 자신의 주어진 운명에 굴하지 않고 운명을 만들어 가는 진취적인 여성으로 서의 왕비가 보이지 않는가? <아듀, 백설공주>를 읽고 나면 그동안 알고 있던 백설 공주 이야기와 진정한 ‘아듀’ 작별을 하게 된다. 알게 모르게 나에게 주입돼 이미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편협된 생각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된다. 잘못된 편견이 굳건이 자리잡힌 어른들에게 더 권하고 싶은 그림책이다. 그림책을 덮고 다시 앞의 김시아 번역가의 서문 속 질문을 되짚어 본다.

<<백설공주>>가 아니라 <<아듀, 백설공주>>입니다. 백설 공주 앞에 붙은 ‘아듀’는 우리에게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무엇과 작별을 해야 하는 걸까요?
- 김시아 번역가 서문 중에서
묵직한 질문이 남는다.
"나는 무엇과 작별해야 하는 것인가?"
"당신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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