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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대왕
김설아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7월
평점 :

세상의 모든 부적응자들에게
평범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무랄 데 없는 평범한 가장이 하루아침에 고양이가 되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회사를 결근한 것이 그리 큰 잘못일까. ‘갱생 프로그램’이라는 알 수 없는 프로그램에 강제로 참가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고양이가 됐다.
아버지는 고양이가 돼서도 평범하게 직장에 출근했다. 사고뭉치일지라도 그는 회사에서 마지막 통보를 하기 전까지 그 무엇도 스스로 박차고 뛰쳐나가진 않았다.
‘갱생 프로그램에 실패했다. 야성에 눈을 뜨고 말았다 (p106).’
이렇게 무책임한 한 마디의 통보로 아버지의 본격적인 고양이 생활은 시작됐다. 성실했던 가장이라면 상상도 못할, 본능에 충실한 사나운 야생 고양이가 되어 동네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 ‘아버지’라는 책임감이 그동안 그를 억눌러왔던 것일까.
왜 얌전하게 있지를 못하냐고, 왜 평화롭게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지를 못하냐고(p115). 울부짖는 외침에도 아버지는 이전과 달리 나를 외면했다.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손하게 구시는 통에 분통이 터질 때도 있었지만 예절과 배려는 인간 사이를 지켜주는 울타리이며, 모든 사람은 귀중한 존재라고 늘 말씀하셨던 아버지(p94)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변화는 우리 가족들을 동네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나의 학교생활까지 엉망으로 만들었다. 외롭던 와중에 아버지가 새로 변한 주리와의 교감은 나를 한층 더 성장시켜 주었다.

어쩌면 속 마음은 이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버지가 그리울텐데,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함께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고양이 대왕>을 읽으면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죽음에도 가족들은 애도하지 않는다. 어린 아이에게 고양이로 변해버린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처음에는 그저 함께하기만 해도 좋았던 아버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치면서 곤란함에 처했을 때 이전과 같은 애틋함은 잠시 잊었을지도 모른다.
갱생 프로그램의 실패, 작가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세상에 적응하는 걸 실패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더 이상 세상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남아있지 못할 때 종국에는 사회와 가정 모두에게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는 씁쓸한 현실을 꼬집은 게 아닐까.
8편의 단편이 수록된 김설아 작가의 <고양이 대왕>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정상의 범주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딘가 기괴한 이들을 우리는 부적응자라고 부른다. 처음부터 부적응자는 아니었지만 어떤 사건의 계기로 세상과는 단절된,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행위를 일삼는데 그들의 일탈이 진정 행복을 부르는지 아니면 불행의 전초인지는 나의 얄팍한 상상력으로는 한계를 느낀다.
고작 병아리에 온 마음을 뺏기는 보통 사람들, <외계에서 온 병아리>의 대단한 전문가들은 그 병의 원인도, 이유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한다. 자신을 이해하는 건 병아리뿐이라는 부적응자들의 외침에도 보통 사람들은 그들을 단지 비정상의 범주에 몰아 갱생해야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다이아몬드 반지에 마음을 뺏긴 <모든 것은 빛난다>의 주인공 소라, 평범했던 그녀의 일상을 파괴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잃고서야 비로소 반짝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된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지고 불행의 늪에 스스로 빠진 그녀의 어리석음을 지탄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오죽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기에 반지에 마음을 빼앗긴 걸까 동정심을 느껴야 할까.
보통 사람의 범주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보니 주인공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게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달의 친절사원>의 주인공 유리나에게 연민을 느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 보통 사람이 되고픈 그녀의 열망이 오히려 공감이 갔다. 엄연히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튀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의 고뇌는 보통사람들의 고민이다. 세상이 바라는 모습에 맞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그녀에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부적응아 새미의 존재는 걸림돌 그 자체다. 사실 고작 말단인 유리나에게 새미를 맡긴다는 것부터가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책 초반에는 부적응자들을, 뒤로 갈수록 보통 사람들을 보여주는 이 책은 서로의 관점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몽환적인 환상 속에 빠져사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고약함이 얼마나 괴로울까. 그런 그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 동료라면?
기준을 만든 세상을 탓해야 하는가, 넓지 못한 아량을 탓해야 하는 것인가.
세상에 억눌리고 억눌려 부적응의 행동을 보이는 이들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가 어디까지나 소설로 느껴지지 않는 건 훗날의 우리가 겪게 될, 어쩌면 현재의 우리 사회가 겪는 갈등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