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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낼 수 없는 대화 -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
장동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평점 :

장동훈 신부의 『끝낼 수 없는 대화』는 결코 쉽지 않은 책이다. 역사적 지식과 미적 안목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까지. 이 책을 ‘잘’ 읽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능력을 요구한다. 다시말해 저자의 통찰력과 지식이 매우 깊고 넓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단순히 명화를 해설하는 책이 아니다. 예술가를 꿈꿨으나 사제가 된 학자의 시선에서 소외된 것들을 일깨우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말한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이들에게 브리헐의 그림은 위로를 준다. 그 느낌이 몽글몽글한 따스함은 아닐지라도 나를 위해주고, 나를 대변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든든함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을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나누는 것이 얼마나 모순되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은연중에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나 아닌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게 정말 불가능한걸까, 그건 기만인걸까. 아니면 나누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걸까. 브리헐의 그림 속 공백을 보며 상상력을 가진 인간이 되고자 다짐하며 생각해본다. 그 공백 속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일지.
우리는 살면서 ‘신념’이라는 것에 얼마나 투철할까. 어떤 사안에 있어 꼭 굳건한 생각과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만이 답이 아님을 프란치스코 고야는 그의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화가는 그저 자신의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세상이 그를 신념없는 자로 내몰지 않았나 싶다. 그만큼 혼란한 세상이었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정의와 선이 바뀌는 시국에 한 개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평소 고야의 그림이 어두침침해 보인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거대한 권력 앞에 유유히 흘러가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그 무력감이 보이는 것 같다. 저자는 고야의 그림이 애도와 슬픔으로 ‘동시대’를 살아냈다고 말하는데 참 멋진 표현이다.
인간의 과거와 인생을 논하는데 어찌보면 밝고 찬란하기만 한 그림이 있는 건 분위기에 맞지 않은 거 같다. 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은 ‘그럼에도’ 앞으로 전진하고, 한 시대를 열심히 살아내고자 하는 한 인간들의 분투기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둡고 힘겹지만 내일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애쓰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집합소. 이전에는 특히 중세 교회를 그저 타락한 집단으로만 생각했다.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을 탄압하는 악의 축 정도로 치부했는데 권력의 끝이 다가올수록 그들도 새로운 변화에 저항하기 위해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불안감을 애써 지워낸 어리석은 집단에 불과했다는, 조금의 연민이 든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언젠가 몰락이 온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적어도 내 대에서만큼은 기득권을 지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을 테니.
누군가 이 리뷰를 보고 교회를 옹호(?)한다고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싶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무리 철옹성처럼 지키려 들어도 결국 허물어진다는 것이니 말이다. 저자가 노동자들과 함께 사목을 했던만큼 평범한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희망’임을 다시금 깨닫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