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 김수영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김수영 지음, 박수연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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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김수영 시인, 한국 근현대사의 산증인이라도 봐도 무방할 만큼 다사다난했던 시인의 삶은 그의 작품을 한층 더 깊고 넓게 만든다. 1921년에 태어난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며 국내 화가 6인이 시인의 시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시그림집,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는 김수영 시인의 작품 80여편을 만나볼 수 있다.

자유와 저항을 외친 시인의 삶은 고통이었다. 진정 분노해야 할 것은 모른 척 눈을 감으며 옹졸한 자신을 비판하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읽을 때마다 내게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자신의 옹졸함이 부끄러우면서도 고작 펜대를 쥐고 한탄하는 것이 전부였던 그에게, 시를 통해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은 일에 분노하고 대의에는 침묵하는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는 그의 고뇌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이 시는 1965년에 이 시를 썼던 시인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묻는다. 과연 우리의 분노는 정당한지.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떄문에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 유학을 떠났지만 그다지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지식인으로서의 현실도피가 아니었을까. 반공과 친공이 치열하게 싸우는 거제포로수용소에서의 삶은 스스로 생니를 뽑게 만들만큼 고통스러웠다. 3.15 부정선거로 4.19 혁명이 일어났고, 자유를 갈망했던 염원은 5.16 군사 쿠데타로 꺾인다. 식민지 시대와 전쟁 그리고 독재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살았던 시인의 삶이 결코 평탄하지 못했으리.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그럼에도 시인은 먼저 일어나고, 먼저 웃고자 한다. 불의의 사고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 은 희망을 말한다. 이 시에 대한 해석은 너무 많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느꼈다.

그의 시는 거칠고 처절하다. 매 순간, 시대의 과제를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이들의 삶의 무게를 글로 표현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고, 권력에 순응하지 않고자 끊임없이 저항했다. 그만큼 진솔하기에, 오늘날까지 우리 가슴 속에 큰 울림을 주는 게 아닐까 싶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예쁘게 재탄생한 김수영 시인의 시집, 글과 그림이 어울러져 해석의 폭을 넓힐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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