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체르노빌 히스토리 -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평점 :

고도화된 과학 기술로 인류는 그
어느때보다도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다. 이 안락함의 대가가
무엇인지 다들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지만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거나 공론화시키는 걸 꺼려한다. 당장 나부터도 그렇다. 모른 척 눈 감는다면 이 안락함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 1986년 4월,
체르노빌을 절망에 빠뜨렸던 원전사고는 점점 사람들의 뇌리 속에 잊혀져 간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무지할수록 마음은 편하니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났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아주 먼 옛날의 일이라 치부하며
인류가 얼마나 자연 앞에서 별볼일 없는지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냥 앵무새처럼 뇌까린다. 그렇지만 2011년 이웃나라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을 대하는 내 태도는 어떤가? 도쿄올림픽 개막이 다가오면서 후쿠시마 산 식재료를 선수단에
공급하는 문제로 떠들썩하다. 그 누구도 원전에 오염된
음식을 먹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왜
무리수를 두려는 걸까.
역사학자이자 체르노빌의
생존자, 세르히 플로히의 『체르노빌 히스토리』를 읽으며
전국가적 재난 앞에서 각자의 이익과 손해를 먼저 계산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뇌를 엿봤다. 어쩌면 선수단의 후쿠시마 식재료 공급도 그런 차원에서 연장선이 아닐까.
대의를 위해, 피해자들을 위해 계산없이 발벗고 나서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 폭탄을 떠안아야 하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무사안일주의가 일을 악화시킨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니까. 그렇기에 4월의 체르노빌은 더 잔인했다.
무지도 죄가 된다. 한 순간의 영웅은 무지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윗선에서 가장 바라는 건 사태를 그럴싸하게
수습하는 것이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가장 고통받는 건 약자들이다. 그들의
삶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는다.
여전히 우크라이나는 체르노빌 복구를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 그들의 상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원전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받아들인다. 모든 문명을 버리고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체르노빌과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그들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당장 얼마 전에 일어난 쿠팡 화재사건만 보더라도 안전불감증에
찌들었지 않은가.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이 답답함의 원인은, 재난에 있어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대처방식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