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5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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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불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정말 다양하지만 대중들에게 흔히 알려진 건 그가 쓴 비극이다. 왜 사람들은 행복한 이야기를 쓴 희극보다 슬픔과 절망, 좌절로 점철된 비극을 더 가치있게 보는걸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시학』에서 극예술에 대해 정리하고 분석했는데 특히 비극이 가진 힘에 대해서 주목했다. 재밌는 점은 내게 아리스토텔레스도 엄청 머나먼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책에서 오디세이아, 일리아스 등 비극을 담은 서사시를 예시로 들며 설명했다는 점이다. 새삼 호메로스가 얼마나 옛날 사람인지, 왜 현대에서 여전히 그가 물음표로만 남은 인물인지 실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특징에 대해서도 정리했는데 흥미로운 건 현대에서도 그 플롯이 그대로 쓰인다는 거다. 모든 사건은 태양이 뜨기 전에 끝이 난다. 그 어떤 영화나 소설도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는 없다. 가장 인상 깊은 건 희극은 우리보다 못한 이를, 비극은 우리보다 나은 사람을 묘방하려 한다는 내용인데 생각해보면 왜 오랜 세월 전해지는 비극의 주인공이 다 신이나 왕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시학을 읽으면서 인간은 자신보다 더 대단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비극에 열광하고 카타르시스, 즉 쾌감을 느끼는 아주 사악한 존재라는 걸 확신했다. 한편의 완성도 있는 극이 쓰여지기 까지 얼마나 많은 원칙이 필요하며, 그 플롯에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지 굉장히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놀라운건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3세기에 살았던 사람이라는 거다. 시학에 정리된 비극에 플롯이 현대에도 유효한 걸 보면 인간의 창의력이 한계가 있는건지 옛날 사람들이 대단한건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짧은 책이지만 고전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시로 든 그리스 비극 작품들을 다 알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컸다. 이번 기회에 책에 서술된 작품들을 읽고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내가 무심코 흥미를 느꼈던 이야기들이 실상 누군가 엄청 치밀하게 정리한 플롯에서 비롯된거라니.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석함에 찬사를 보낸다. 옛날에 이렇게 대단한 일들을 다해두니 현대를 사는 문과생들이 살기가 힘든거다. 비극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어 재밌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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