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본사에 관심이 많은데요, 메이지 유신은 잘 모릅니다. 어쩌니저쩌니 해도 역사의 묘미는 영웅 이야기니까요! 이 책은 메이지 유신의 토대를 마련한 4명의 혁명가를 다룹니다. 전쟁이 없어 너무도 평화로웠던 도쿠가와 막부 체재 아래 사무라이들의 위상은 전과 같을 수 없었고 이는 ‘책 읽는’ 사무라이를 만드는데요.
가장 먼저 등장하는 책 읽는 사무라이는 조슈번의 천재 요시다 쇼인입니다. 이 사람… 꽤 골때립니다. 미국으로 가겠다고 도항도 하고, 뻑 하면 감옥에 갇힙니다. 하지만 페리 제독의 함대를 보고 창 검술에 집착하는 사무라이의 자존심을 버리고 해군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감옥에 갇힌 시기엔 3년 동안 1,500권이나 되는 책을 읽는데요… 백수도 이만큼 책 못 읽습니다. 송하촌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신의 야망(?)을 주입하는데요. 이때 그의 아래서 수학한 사람들이 메이지 정부의 내각을 그대로 옮겨뒀다고 할 만큼 메이지 유신을 이끈 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칩니다. 이토 히로부미도 요시다 쇼인에게 아래서 배웠다네요. 제대로 된 군함 한 척도 없으면서 조선과 중국을 넘어 아시아를 정복하겠다는 망상을 이때부터 꿈꾸는데요, 망상이 현실이 될 줄이야…. 역시 꿈은 크게 꿔야 하군요.
다음장에 다루는 인물은 사카모토 료마입니다. 시바 로타료의 소설 주인공으로 유명세를 더한 인물입니다. 한국에서는 ‘료마가 간다’와 대망 3부 주인공이죠. (둘 다 같은 책인데 제목만 다릅니다.)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일본에선 이 소설 덕분에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던 사람에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인물로 거듭났다고 하네요.
사카모토 료마에 대한 부분을 읽고 든 생각은 참 자유로운 영혼이 아닐까 싶습니다. 활달하고 웃음 많은 해군 덕후? 신념이란 게 어느 순간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치우 칠 수 있는데요, 료마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꽉 막히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방식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인물이 천왕 중심의 신정부를 만드는 데 일조한 일등 공신이라니,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도 안 되고, 매사에 진지하게 인상 쓰고 살 필요도 없다는 걸 보여주네요.
“세상에 태어난 것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다”
오래 살진 못 했어도 자신의 포부처럼 참 멋지게 살다 간 인물입니다. 소설의 후광도 있지만 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짧은 소개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네요.
270년간 일본을 지배했던 도쿠가와 막부의 끝이 점점 다가오는 혼돈의 시기, 시대의 과제를 고민하던 한 청년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이유가 어찌되었든 막부도, 번도 외세의 힘을 끌어들이지 않았다는 점이 조선과 대비됩니다. 내전을 스스로 통제할 힘이 없는 지배층은 이미 지도력을 상실한 게 아닐까요?
원래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인기가 없다. 그보다는 적당한 때에 멋지게 산화해가는 게 명예와 인기를 위해서는 더 나은 일인지도 모른다. (p225)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사무라이로 평가받는 사이코 다카모리, 유신삼걸 중 일인이었던 그는 메이지 정부를 향해 반란군을 일으켰지만 ‘근대 일본의 로망’으로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당시 서구의 근대문화를 받아들이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이성적 사고가 상실감까지 해소해주진 못하니까요. 반란군의 수괴였지만 그는 끝까지 일본의 전통을 수호한 영웅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존왕양이를 지지하는 사무라이들에 의해 탄생한 메이지 정부의 방향성이 ‘양이’를 배척하자 사무라이들의 불만은 날로 거세지고 사이코 다카모리가 ‘정한론’으로 이를 타파하려 했단 점을 보아 한국인 입장에서 마냥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 번뿐인 인생 멋지게 살다간 인물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카모토 료마 편을 읽을 때도 그렇지만 제일 눈길이 가는 건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 장군 도쿠가와 요시노우의 결단력입니다. 저자도 말했듯 권력자는 위기가 심해질수록 더욱 강경한 수단을 써서 권력을 유지하려 하다 문자 그대로 붕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 역사의 상례(p293)인데 요시노우는 기꺼이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고 다음을 기약합니다.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인지 유신삼걸은 메이지유신이 나고 약 10년 만에 다 세상을 떠나지만, 그는 1912년까지 산다(p211)는 책 속의 구절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일본 전통과 일본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역설적이게도 일본을 ‘유럽적인 하나의 제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p260)
메이지 정부의 기틀을 닦은 오쿠보 도시미치는 앞서 말한 사이고 다카모리와 함께 유신삼걸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지극히 현실주의자였던 그는 ‘이와쿠라 사절단’에 합류해 서양의 근대문명을 두 눈으로 직접 봤었는데요. 일본의 국력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 체감한 그에게 여전히 사무라이의 낭만을 부르짖는 이들이 얼마나 한심했을까요.
‘서양을 배워 그보다 강한 일본을!(p282)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유지는 그대로 계승되었지만 솔직히 앞서 본 사카모토 료마나 사이고 다카모리에 비해 확실히 임팩트는 없습니다. 그저 참 열심히 일했구나, 딱 이 정도 감상밖에 들지 않네요. ‘근대 일본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그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 소설이나 드라마가 없는 이유가 납득이 됩니다. 역시 사람은 적당히 일하며 살아야 하군요.
이 책의 저자 박훈 교수님은 혹여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무시한다 해도 우리만큼은 일본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반대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존경한다 해도 우리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다(p17)고 들어가는 글에 밝혔는데요. 무시를 하든, 존경을 하든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를 알아야 가치판단을 내릴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메이지 유신’을 이끈 사무라이 4인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동시대에 조선의 행보를 생각한다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지만요.
우리가 현대 일본의 유리와 현재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깊게 이해하려면 메이지유신에 대한 식견을 갖고 있어야 한다(p286)는 말을 기억하며 이 책을 덮습니다. 한국인이라면 꼭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