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선정에서 들리는 공부를 권하는 노래 - 겸산 홍치유 선생 권학가, 2020년 지역출판활성화 사업 선정 도서
홍치유 지음, 전병수 옮김 / 수류화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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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했던 시절, 교육만이 이 어둠을 걷어낼 수 있으리라는 신념으로 후학 양성에 힘쓴 학자들이 있다. 사재를 털어 무료로 숙식과 교육을 제공한 관선정서숙의 창립자 남헌 선정훈 선생, 그리고 그곳의 교수를 초빙되어 1927년부터 12년동안이나 관선정을 지킨 홍치유 선생의 사상이 고스란히 담긴 『관선정에서 들리는 공부를 권하는 노래』는 제목의 편견처럼 공부를 하라는 내용의 권학가가 전부가 아니다. 초본인 영언을 펼치면 공부보다는 세상 만물의 이치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치밀한 고민이 느껴진다. 약간 옛날 판 자기계발서 느낌이랄까?

주된 내용은 젊은 사람들이 학문을 부지런히 익히고 실천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스승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다. 그중에서 홍치유 선생은 실천을 가장 중요하게 꼽는다. <자세히 묻고 널리 배움도 좋지만 철저하게 실천하는 공부가 가장 어렵다(p307)>는 그의 말처럼 실상 학문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나 그 학문을 바르게 이 세상에 선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힘쓸지어다. 우리 동지여. 실제의 참된 공부를 해보세(p305)>라며 우렁차게 노래를 불렀을 관선정의 학생들이 어떤 모습일지 잠시 상상해본다.

좌절과 패배감으로 점철되었을 1927, 나라 잃은 그 슬픔과 원한을 어찌 풀어야 할지 방황했을 법한 시기에 홍치유 선생은 자신이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바로 교육이었다. 물론 권학가인 이상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내용도 담겨있지만 여러 방면에서 선생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작금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비롯된 건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현실을 고발하는 내용, 우리 역사의 긍지를 잊지 않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에 희생되는 약자를 향한 애통함까지. 한 사람의 일생의 사고가 담긴 소중한 기록이다. ‘사람이 되어라, 사람이 되어라’,며 되뇌는 홍치유 선생의 글에서 그가 바라는 사람은 어떤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할지 잠시 선생의 마음이 되어본다.  

<종남산 큰나무 수령이 오래되어 속이 썩네(p239)>라며 비통해 하는 지식인의 심경이, 경술년 이후 차마 말하기가 쉽지 않다며 속을 앓는 그의 마음이 종남산 큰나무와 다를 게 무엇이랴. 한자도, 한문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가 홍치유 선생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던 데는 상세한 역주가 한 몫한다. 역주가 없었다면 나는 이 책을 읽을 수도 없었으리. 다만 궁금한 것은 어찌되었든 권학인데 이 책을 어떻게, 어떤 리듬으로 노래를 불렀을지 잘 상상이 안간다. 초학자에게 노래로 학문을 익히게 하면 쉽게 질리지 않다 하는데 이런 내용을 어떻게 노래로 만들지? 가락과 함께 얽힐 권학가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앞이 안보이는 이 시기, 무수히 많은 지식인들이 변절해 친일의 길을 걸었을 이 시기. 권선정에서는 여전히 조국 독립을 이끌 일꾼을 양성하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 권학가를 부르며, 들으며 공부를 했을 선조들을 상상하며 책을 덮는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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