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 유물과 유적으로 매 순간 다시 쓰는 다이나믹 한국 고대사 서가명강 시리즈 12
권오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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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라는 한마디로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엄격한 논리가 요구된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학은 인문학임과 동시에 과학이다. 고대 한국 국가들을 한반도 바깥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대륙사관이라는 용어로 미화되지만, 실은 반도에 대한 지독한 열등감의 발로다. (p12)

 

 

전공자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역사를 조금 더 많이 배우고, 누군가의 가치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입장이다 보니 시대를 막론하고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항상 조심스럽다. 당장 어제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도 오락가락한 데 천년도 더 전에 멸망한 국가의 역사를 우리가 얼마나 정확하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삼국시대를 공부할 때면 소위국뽕에 취하기 싫어 선조들의 업적을 더욱더 의심하고 경계했었다. 서가명강의 12번째 이야기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권오영 교수가 들려주는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몇 년 전, 교양으로 한국사를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시 강의를 담당하던 교수님의 성향이 민족주의적이었다. 그분들도 오랜 시간 연구를 통해 내린 결론인 만큼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며, 내가 감히 옳고 그름을 가릴 만한 깜냥이 되지 않기에 이 부분에 대해 뭐라 의견을 낼 순 없지만 삼국시대, 아니 그 이상 거슬러 올라가 한반도에 살았던 인류의 우수성을 주창할 때면 수천 년 전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곤 했다. 이 부분에 대한 답은 사실 간단하다. 유적 발굴. 우리가 서 있는 이 땅 아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비밀이 숨어있다. 문제는 이 유적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냐인데, 과거에는 발굴하기 전 몰래 유적을 묻어두는 일도 횡행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학제 간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다 보니 그런 만행이 가능할까 싶긴 하지만 고대사를 연구하는 것이 그만큼 한정적인 자원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 만큼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단 생각도 든다. 대중이 흥미로워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결국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그런 뻔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저자가 책에서 이 부분에 대해 의견을 강력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나는 역사가 소설이 되어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유에는 대중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는 몇몇 학자들의 책임도 있다 본다.

 

 

앞으로 역사학자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 고고학자가 발굴한 유물을 가지고 화학자와 함께 분석하기도 하고, 토목공학자와 함께 공학적 원리를 규명하는 식으로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역사 연구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p69)

 

 

다행히 권오영 교수는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을 명확히 가지고 있다. 현 고대사학계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연구와 대중이 알고 싶어 하는 주제가 괴리감이 있다는 거다. 그는 특히생활사를 복원해 빅데이터를 활용한 젊은 연구자가 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란 건 사학계가 꽤나 구체적으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단 점이다. 더 이상 땅에서 출토된 유물을 고고학만의 전유물로 생각하지 않고 학문간 경계를 허물고 먼저 다가서고자 하는 학계의 노력이 엿보였다. 특히 인골이 출토될 때 법의학자의 역할이 지대하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의 관계만을 바라보는 좁은 시야 때문에 한과 경쟁했던 고조선을 조망하며 외로운 동쪽의 섬나라였던 우리의 처지를 한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넓히면 고조선과 같은 시기 고대 국가를 형성하며 비슷한 운명에 처했던 여러 세력이 눈에 들어온다. (p202)

 

 

이 책의 진정한 묘미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는 데 있다. 나도 아직 동북아 중심의 역사관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했지만 우리것에 집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안다. 민족사를 넘어서서 인류 공동의 역사 연구에 앞장서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이라 할 수 있겠다(p248)는 저자의 말처럼 역사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도 변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왜 역사를 연구하고 공부하는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질문에 답을 스스로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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