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평점 :
나는
‘진저브레드’와
‘생강빵’이
비록 같은 종류의 음식을 가리킨다 해도 두 단어의 용법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월귤’과
블루베리‘는
같은 과일을 뜻하지만 단어의 어감은 판이하게 다르게 느껴진다.
(p8)
대단하진
않지만 종종 번역을 하는 입장에서 비슷한 듯 다른 두 단어의 어감을 정확히 전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공감한다.
소설가이자
영미문학 번역가인 김지현 작가의 산문집『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어린 시절 세계 명작 속 등장하는 음식을 상상하던 소녀가 훌쩍 커 문학
속에만 존재하는 문학적 음식들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한국어로 옮겨져 우리에게 도착했을 때의 ‘맛’에
대해 이야기(p9)한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옛날,
독자들은
소설 속 주인공들이 먹는 이국적인 음식을 어떻게 상상했을까.
생전
본적도 먹은 적도 없는 음식을 그럴싸하게 번역해야하는 번역가의 고충도 컸겠지만 이국적인 어감 덕에 지금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음식조차도 생경하게
받아들였을 독자의 즐거움도 컸으리라.
개인적으로
책의 세부내용을 흘겨 읽는 스타일이다 보니 고전 속 이렇게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했는지 알지 못했다.
무심코
지나쳤던 문학 작품 속 음식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독자들에게 소개하니 이야말로 ‘맛있는
책’
아니겠는가.
문학은
지극히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묻혀 있던 사물들이 본연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오고,
평생
한 가지 용도로 써온 물건에서 갑자기 전혀 몰랐던 용도를 발견한다.
(p100)
이
책에 등장하는 문학 작품들은 대게 제목 정도는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명작들이다.
대략적인
스토리는 알지만 음식과 문학이 만나 이토록 창조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니 놀라웠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등장한 ‘옥수수
팬케이크’가
흑인 계층의 애환을 상징하는 ‘소울
푸드’였다니.
현대에
와서 소울 푸드의 뜻은 변질됐지만 톰 아저씨의 부인 클로이 아줌마에게 훌륭한 요리 실력이 가진 의미는 특별했다.
백인들이
아무리 노예의 몸을 사고 팔아도 그들의 ‘소울’까지
소유할 수는 없었듯이.
그들이
노예의 능력과 민족성을 아무리 평가절하해도 흑인들이 일군 문화의 고유한 가치가 어디 가는 것이 아니다(p55)는
저자의 해석은 음식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얼마나 강렬하게 표현하는지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비비언
리의 스칼렛 오하라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이 미인이 아니라는 작가의 첫 문장은 머릿속에 흔적조차 남지 않았을 거다.
미국
남부 대농장의 귀한 딸로 언제 어디서나 품위를 강조하는 가풍은 어린 소녀에게 엄청난 억압이었을 것이다.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한 파티에서 남자들에게 내숭을 떨기위해 음식을 새 모이만큼 먹어야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는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먹성이
좋으면 남편을 구할 수 없다는 유모의 엄포에 결국 백기를 든 스칼렛은 결국 파티에 가기 전 그레이비에 든 햄을 먹는다.
그레이비에
든 햄,
내게는
꽤 익숙한 음식이다.
사실
서양에서는 매우 평범한 음식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그레이비와 그때 스칼렛이 먹은 그레이비는 같은 음식이 아니었을 거라는 저자의 해설이다.
먹음직스러운
갈색 소스가 그 시절에는 고기를 구울 때 나온 부산물조차도 그냥 먹기 아까워 재활용 한 것이라니(p113).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영화를
본지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전쟁 이후 굶주림과
싸우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아픔에 싸워야 하는(p110)
스칼렛에게
그때 그 그레이비는 어떤 맛으로 기억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를
읽으며 한 권의 책을 읽는 건 그 책의 배경이 되는 한 나라의 문화를 간접 체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매우 희귀한 셜록 홈즈에 등장하는 멧도우 요리,
먹고
즐기는 것을 모토로 삼은 안나 카레니나의 오블론스키의 미식가적 면모를 뽐내는 플렌스부르크 굴,
알프스로
돌아가고 싶은 하이디의 의지를 담은 흰 빵,
극빈층이나
먹었던 바닷가재가 고급 요리가 된 배경까지.
모르고보면
무심코 지나치겠지만 알고 보면 특별하게 와 닿을 문학 속 음식들이 한자리에 모아 읽으니 군침이 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특별한 날에 큼지막한 케이크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