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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 ㅣ 보리 인문학 1
한명기 지음 / 보리 / 2019년 11월
평점 :

수많은
간난신고를 감내하면서 종사를 살려 낸 최명길은 ‘진회보다
더한 만고의 간신’이
되고,
항복
직후 인조를 버리고 낙향했던 김상헌은 ‘조선의
정사正士이자
영원한 사표’가
되었다.
기막힌
대비였다.
(p11)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인조반정을 일으킨 공신 치고 진정 나라를 위한 충신은 없다고 단언한다.
영화
남한산성의 효과로 최명길은 충신,
김상헌은
꽉 막힌 사대부로 흔히들 생각하는데 내 입장에서 본다면 그놈이 그놈이었다.
병자호란이야말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처참하게 백성들이 도륙당한 참혹한 전쟁이었다.
능력도
없으면서 권력욕으로 왕위를 찬탈한 정권에 어찌 찬사를 보낼 수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인조 정권의 주축인사였던 최명길에 대한 내 평가는 박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최명길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지만 그냥 싫었다.
조선을
구한 외교관이라는 칭송이 참 허황되다 생각했다.
지금도
이 생각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한명기 교수의 『최명길
평전』을
읽으며 최명길의 사람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김상헌처럼
자신의 신념을 주창하며 제 뜻이 관철되지 않자 상대가 이 난국을 얼마나 잘 헤쳐 나가는지 바라만 보는 건 쉽다.
명나라에
대한 지극한 사대정신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나 역시 비슷한 성향이다 보니 그의 행동에 상당히 공감했다.
하지만
최명길은 인조를 왕위에 올린 자신의 실책을 수습하고자 세간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전면에 나서서 고군분투했다.
무능한
임금을 버리지 않고 그를 보좌하며 어떻게든 이 난국을 이겨내고자 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단순 권력욕에 심취한 사람으로만 생각했던 최명길에 대해 이전보다는 한결 누그러진 시선으로 인간 최명길을 바라보게
됐다.
애초
거사를 도모할 때는 광해군 정권의 난정과 탐학을 소리 높여 비판했지만 권력을 손에 넣자마자 ‘역적’들이
남긴 재산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p134)
최명기의
부친 최기남은 광해군 대에 벼슬살이를 했으나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파직 당한다.
저자는
광해군에게 ‘효성을
다하라’는
상소를 올린 최기남의 성품에 최명길이 큰 영향을 받았을 거라 말하지만 나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임진왜란으로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비통에 빠졌는데 노망난 줄도 모르고 제 아들보다도 어린 여자를 새어머니라고 들인 선조가 모든 일의 원흉이지 광해군의 잘못이
아니다.
세가
없는 후궁의 자식이었던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을 때 어린 새어머니와 자신을 가장 위협할 적통의 아우를 살뜰히 살피라니,
도대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비양심은 어디까지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최명길의 집안은 벼슬길이 막혔고 이는 최명길이 광해군의 치적과 무관하게 인조반정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인조반정은
그저 흔한 권력 다툼이었을 뿐,
효성이니
뭐니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는 전혀 없다.
‘단지
주인이 바뀌었을 뿐이다’하는
냉소까지 나오는 실정이었으니(p100),
권력욕에
심취한 무능한 인사들이 이끌 조선의 명운이 다하지 않은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병자호란
항복 이후 최명길은 청과의 외교에서도 자신의 소명을 정립했다.
그것은
‘가난한
선비의 아내’이자
‘약한
나라의 신하’였다.
(p415)
청나라 군대가 한양
목전까지 왔을 때,
최명길은 적진으로
달려가 그들의 진격을 늦춰 인조 일행은 남한산성까지 도망갈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임금을
살리고자 한 그의 노력은 가상하다.
평전에서는 최명길의
행동을 참 일괄되게 서술한다.
그는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훗날 김상헌과
화해했다는 대목에서 명나라를 배반하고 청나라에 항복한 것이 그의 본심이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다만 약소국의
신하로서,
종묘사직을 살리기
위해 실리를 택한 것뿐이다.
조정에
나아가 벼슬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고,
물러나는
것은 귀하게 여기는 것이 일종의 풍조가(p385)
되어버린 세상에서
가난한 선비의 아내는 어떻게 살림을 꾸릴 것인가.
고문관 상사 아래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최명길의 이야기는 참....
이전까지 덮어두고
손가락질 했는데 이젠 그러지도 못하게 됐다.
무엇보다 피로인과
속환 여성을 보듬으려는 부분은 인상 깊었다.
뭐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으니 그 진정성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다른
신료들보단 백성을 위한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최명길
‘평전’인 만큼 그의
공로를 찬양하는 내용이 절대적이지만 그의 업적보다는 일관된 성품과 책임감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적어도 이전만큼
미워하진 않을 것 같다.
혼란스러운 정국에
심판자,
평가자가 되는 건
쉽지만 일꾼이 되는 건 쉽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