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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봄 - 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8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0년 3월
평점 :
십팔
년 전 목수의 아들 잇페이부터 십일 년 전 사노 촌의 고키치에 이르기까지 네 남자애의 실종.
이
괴사건에 관해 한주로는 며칠 동안 개처럼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고 파헤쳤다.
(p9)
시게오키의
착란과 중첩된 점이 없어 보이면서도 묘하게 신경에 거슬리는 네 남자 아이의 실종사건.
다지마
한주로는 아이들의 실종을 조사한 자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에 더 큰 의문을 느끼며 본능적으로 이 사건은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걸
직감한다.
그리고
한주로의 직감은 탁월했다.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세상의
봄』하권은
상권에서 뿌린 떡밥을 하나하나 회수하며 기타미 가문의 치열했던 세력 다툼을 거슬러 올라간다.
도망친
줄 알았던 전 수석 요닌 이토 나리타카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고코인은 위험에 휩싸인다.
그간
고코인의 집지기로만 알려졌던 고로스케가 실은 시게오키를 노리는 자객이었던 것.
이
과정에서 기타미 번을 섬기는 첩자 가게마와리와 기타미 가를 위해 움직이는 첩자 틈새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기타미
번을 섬긴다는 것과 기타미 가를 섬긴다는 건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그 차이는 명백하다.
틈새의
존재 의의는 기타미
가 일문의 안정된 지배와 번영을 뒤흔들 모든 동향을 경계하고 그것이 나타나면 제거하는 것(p33),
그들의
충정은 오직 기타미 가 일문만을 향한다.
“나는
원수를 갚았어.
어렸을
때 당한 처사에 대한 원수를.
진심으로
그러고 싶다고 바랐기 때문에 악귀가 나타났어.
소심한
내가 내 의지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악귀가 대신해서 처리해 준 것이야.”
(p125)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시게오키 홀로 간직하고 버텼어야 했을 긴 시간들을 생각하자 가슴이 아팠다.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라 그 일이 밝혀지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p30)
스스로를
병들게 한 그의 선택에 누가 돌을 던지랴.
그는
마음속에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직면하기 두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그들을 소환했다.
가장
어린 소년인 고토네는 시게오키의 ‘소망’으로
그가 산다는 것에 짓눌릴 것 같아져 마음속으로 도망치면 고토네가 나타나서 그를 대신해주었다(p116).
시게오키의
노여움의 화신은 항시 그를 대신하여 악인을 처단했다.
첩자
고로스케가 고코인을 위협할 때,
아내
유이를 욕보인 시녀에게,
그리고
자신을 괴롭힌 이들에게 노여움의 화신이 휘두르는 검은 가차 없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두려워 한 여인.
너무도
두려운 나머지 그녀가 되었던 시게오키.
기타미
가의 귀한 적자에게 도대체 어떤 억한 심정이 있었던 것일까.
왜
시게오키는 스스로 망가지길 택했던 걸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명군으로 명성 자자했던 시게오키의 아버지 기타미 나리오키의 개혁에서부터 모든 것이 비롯되었음을 알게
된다.
지독한
악연은 두 부자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고코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시게오키를 위해 일한다.
그들이
뿜어내는 삶의 활기는 시게오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어 번주로서
실패하고 한 인간으로서도 한 번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자신의 목숨을 기타미 땅을 위해,
영민을
위해 가능한 쓰고자 한다(p454).
과거의
악연이 아니었다면 평탄했을 청년 번주가 번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우려했던 내 걱정이 무색하게 시게오키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키도,
시게오키도
참 강한 사람이다.
미미여사의
에도물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각기 작품마다 와 닿는 따스함이 다르다.
세상의
봄을 쟁취하기 위해 합심하는 고코인 사람들의 이야기,
다가올
봄날을 기다리며 읽기 참 좋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