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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봄 - 상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7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0년 3월
평점 :
변덕스럽고
잔인한 운명은 다키처럼 하찮은 한 여자에게도,
오
년 전 그 여자의 눈에 늠름하게 비쳤던 청년 군주에게도 평등하게 찾아들었다.
(p21)
기타간토의
작은 번 기타미의 6대
번주 기타미 시게오키는 정신착란을 이유로 번주의 별저인 고코인에 유폐된다.
아버지인
5대
번주의 급서로 젊은 나이에 번을 이어받은 그는 일개 향사 출신 이토 나리타카를 수석 요닌으로 등용해 세인들의 불평을 샀다.
기타미
시게오키가 번주에 오른 지 5년
만에 그는 실각했고,
벼락출세한
이토가는 몰락한다.
토목청
감독을 지낸 가가미 가즈에몬은 이혼 후 친정에 돌아온 딸 다키와 성읍에서 3리(12km)가
넘는 나가오 촌에 은거하며 지낸다.
정쟁과는
거리가 멀었던 부녀에게 이토의 적자 이치노스케와 유모가 도피해오면서 다키는 접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가가미 가와 이토 가의 인연이 어딘가
얽혀있단 의심을 한다.
사람의
인연과 운.
맺어졌다
끊어지고,
열렸는가
하면 닫힌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 같다(p45).
30년
작가 생활을 기념해 야심차게 내놓은 미스터리 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걸작 『세상의
봄』,
지금껏
드러낼 수 없었던 과거의 은폐된 진실을 바짝 쫓는 만큼 소설 속 분위기는 내내 어두웠다.
하지만
제목이 말해주듯 언젠가 세상의 봄은 찾아온다.
가가미
가즈에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홀로 된 다키에게 찾아온 사촌동생 다지마 한주로는 그녀에게 급히 짐을 꾸리게 한 후 고코인으로
데려간다.
“절대로
떠오르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들었는데.
왜
발견된 거야.
큰
나리께서 노여워하실 거야.
누가
옛날 일을 다시 끄집어내려고…….”
(p453)
실성한
청년 번주 기타미 시게오키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는
한 사람이되,
세
사람이었다.
전
수석 요닌 이토는 시게오키의 착란이 사령 때문이라 확신했다.
십육
년 전,
죽은
이를 만날 수 있는 미타마쿠리(p146)를
행하던
쿠리야 일족의 몰살이 그 원인이란 것.
왜
쿠리야 일족이 몰살 당해야했는지 그 이유를 파헤치는 것이 이토에게는 일생의 과제였다.
비밀스러운
고코인에서 다키는 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상냥한
그녀의 천성은 낯선 사람을 거부하던 시게오키의 마음을 움직이고,
빗장
속에 가둬 둔 과거를 조금씩 꺼내 보인다.
시게오키의
어린 시절을 살뜰히 살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전 에도 가로였던 이시노 오리베는 두 팔 걷어 부치고 비운의 청년 번주의 완치를 위해
나선다.
그것이
설령 선대의 허물을 드러내는 일일지라도 그들은 더 이상 덮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안다.
고코인의
아름다운 호수에서 발견 된 어린 아이들의 유골,
이
차갑고 깊은 호수가 품고 있는 섬뜩한 비밀을 어떤 사악함을 감추려는 것인가.
세상의
봄에 다다르기까지 그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한때는
위풍당당했던 한 사내도,
이혼의
아픔을 겪고 친정으로 돌아온 한 여인도,
모두
말 못할 고민을 품고 산다.
과거를
딛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이들의 첫 걸음,
세상의
봄 상권에서 만나볼 수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펜 끝에서 쓰인 이 소설은 그녀의 에도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역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