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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회의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6
이케이도 준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평점 :

“회사에
필요한 인간 같은 건 없습니다.
그만두면
대신할 누군가가 나와요.
조직이란
그런 거 아닙니까.”
(p41)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최강자,
‘한자와
나오키’의
저자로도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케이도 준의 최신 베스트셀러 『일곱
개의 회의』는
대형 종합 전기회사로 손꼽히는 ‘소닉’의
자회사 ‘도쿄겐덴’에서
일어나는 전쟁터 같은 직장 생활을 그린다.
매일매일
치열하게 살지만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인간부품,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하는 직장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 낱낱이 까발린다.
도쿄겐덴의
최연소 과장 사카도 노부히코가 만년계장이자 잠 귀신 핫카쿠로 불리는 야스미 다미오를 괴롭혔다는 명목으로 임시위원회에 회부되어 징계를
받는다.
‘직장
내 괴롭힘’이
요즘 큰 이슈이긴 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신망을 잃은 핫카쿠와 에이스 사카도의 운명이 이렇게 극적으로 갈릴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늘
‘그
외 다수’
중
하나였던(p16)
영업2과
과장 히라시마가 보결로 꽃 같은 1과
과장직을 맡고 화려한 실적 속에 숨겨졌던 1과의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된다.
“꽃
같은 1과,
지옥
같은 2과……(p49)”
이
얼마나 허무한 외침이란 말인가!

결국
하청의 수익을 대기업이 빨아올리는 구조,
그저
한쪽의 이익을 다른 쪽의 이익으로 갈아끼울 뿐인 구조를 강요당하는 것 아닐까.
대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하청은 적자가 된다.
(p87)
철강회사에
다니던 미사와 이쓰로는 3대를
이어온 나사제조업체 네지로쿠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그가 네지로쿠의 사장이 된 이래 단 한 번도 매출을 늘리지 못했다.
더
이상 은행에서도 자금을 융통해주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 때,
그의
주요고객이었던 도쿄겐덴으로부터 원가절감을 수용하지 않을시 거래불가 통보를 받는다.
이미
원가를 깎을 만큼 깎은 상황에서 더 이상 후려치기는 용인할 수 없었던 이쓰로는 도쿄겐덴의 제안을 거부하고 이는 네지로쿠의 위기로
이어진다.
대기업의
불합리한 요구를 수용해야하는,
바람
앞의 등불과 다를 바 없는 중소기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원가절감’
이
얼마나 마법 같은 단어란 말인가.
이를
위해서라면 영혼까지도 팔아야하는 사람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근본적인
원인을 묻게 된다.
“난
영혼까지 파는 장사는 하고 싶지 않아.”
(p334)
비록
지금은 한심하기 그지없는 만년 계장이지만 잠 귀신 핫카쿠도 한때는 촉망받는 인재였다.
회사원으로서
보자면 입사동기인 영업부장 기타가와와의 격차는 천지차이지만 승진을 포기함으로써 자유를 얻었다.
자신이
판매한 물건이 계기가 되어 한 사람이 자살을 했다.
그
이후,
핫카쿠는
이전처럼 달리지 않았다.
그는
이 치열한 현실에서 낙오되었다.
영혼을
팔지 않았지만 그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혔다.
네지로쿠
입장에서 본다면 무리하게 원가절감만을 외치는 도쿄겐덴는 절대 악처럼 보인다.
하지만
도쿄겐덴도 낮은 가격을 내세워 치열한 입찰경쟁에 뛰어들어야한다.
그리고
그들의 위치는 어디까지나 자회사,
모회사인
소닉에 실적을 보여야한다.
그
누구도 영원한 갑이 아니다.
모두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결국
도쿄겐덴에서 일어난 이 추악한 사건의 진실은 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다.
무조건
더 싼 것만을 외치며 가격경쟁력으로 승부 보려는 이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더 싼 것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로인한 피해는 오로지 소비자가
감당해야한다.『일곱
개의 회의』를
읽다보면 과연 나라면?
이란
가정을 하게 된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한
가지 사건을 여러 사람의 시선에서 보여주다 보니 그 누구도 악인이라 손가락질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라는
도덕책 같은 이야기도 차마 말 할 수 없었다.
결국
원가 절감,
하청
후려치기 같은 문제는 한 개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바뀌어야
하는 건 사람들의 인식과 시스템이다.
사건이
터지면 ‘책임
소재’부터
찾아 나서는 이 사회가 변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무
고지식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대충대충이어도 잘 안 풀리는(p461)”
세상의
모든 월급쟁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