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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 ㅣ 펭귄클래식 156
제인 오스틴 지음, 류경희 옮김, 피오나 스태퍼드 해설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예쁘고
똑똑하고 부유한 데다 안락한 가정에 명랑한 기질까지 갖춘 에마 우드하우스는 삶에 필요한 최상의 축복을 한 몸에 타고난 사람
같았다(p9).
제인 오스틴의
『에마』
첫 구절을 보자면
에마 우드하우스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이 “나
외에는 어느 누구도 그리 좋아하지 않을 여주인공”이라 말할 만큼
오만하고 독선적이다.
아버지를 보필하기
위해 ‘비혼’을 선언한 그녀는
결혼을 중매하는 일을 낙으로 삼는다.
자신은 사랑에
빠지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타인의 결혼을 주선하는 걸 가장 즐거운 일이라 말하다니,
귀여운 아가씨의
모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에마
우드하우스에게는 마땅히 친구라 부를만한 사람이 거의 없는데 애당초 또래가 많은 지역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동갑인 제인 페어팩스의 과묵함은 에마에게
불편함을 준다.
16년간 에마의
가정교사로 함께한 테일러 선생님이 랜들스에 사는 지역 유지 웨스턴씨와 결혼하면서 집을 떠나 혼자가 된다.
그런 에마에게
예쁘고 귀여운 데다 자신을 숭배하는 해리엇 스미스가 마음에 드는 건 필연적일테다.
해리엇 스미스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사생아로 출생이 불분명하고 영특하진 않지만 사랑스러운 아가씨로 에마는 그녀에게 좋은 짝을 맺어주고자
한다.
이들의 관계는 그리
평등하지 않는데 에마는 해리엇이 자신으로 인해 우아해진다 믿고는 그녀를 더 괜찮은 숙녀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두 사람의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교구 목사 엘턴과 해리엇을 엮으려는 에마의 속마음은 참 이중적이다.
엘턴과 해리엇의
격차는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 믿으면서 자신을 넘보는 엘턴의 마음은 망상으로 일축하다니.
엘턴을 거절하며
재능으로나
온갖 고귀한 정신적 자질로 보나 그가 그녀보다 얼마나 열등한 존재인지 깨닫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일 자체가 합당하지 못한지도
몰랐다(p189)는 그녀의 속마음은
자신은 사람을 신분으로 나누며 그에 마땅한 대우를 해도 되지만 남은 안 된다는 지독히 계급중심적인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정말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친해지고 싶지 않은
아가씨다.
“틀림없이
그 시기에는 나이틀리 씨 판단력이 저보다 훨씬 더 뛰어나겠네요.
하지만
이제 스물 한 해가 지났으니 우리 두 사람의 분별력이 훨씬 더 비슷해지지 않았을까요?(p140)”
돈웰 애비 영지의
주인,
존 나이틀리씨는
에마의 언니 이자벨라의 남편의 형으로 우드하우스 가문과 오랜 교분을 맺고 있다.
에마의 보금자리
하트필드에 자주 드나드는 그는 에마
우드하우스의 흠을 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고,
그
흠을 그녀에게 대놓고 지적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p17).
그는 엘턴 목사와
해리엇을 이어주려는 에마의 노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꿰뚫어보고는 그만두라 조언을 하지만 이 앙증맞은 아가씨는 그녀가 어렸을 때는 몰라도
지금은 이전보다 서로의 분별력이 훨씬 더 비슷해졌을 거라 항변한다.
에마의 가정교사였던
테일러 선생님의 의붓아들 프랭크 처칠이 아버지의 결혼식에 불참한 것도 모자라 편지만 보낼 뿐 랜들스를 방문하지 않는 것에도 강한 의견 차이를
보였지만 에마는 그에게 있어 자신이 언제나 첫 번째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존 나이틀리씨는
굉장히 사려 깊은 남자로 남자가
마땅히 갖춰야 할 누구에게나 인정 많게 대해 주되 누구에게나 친하게 대하지는 않는(p440)
신사 그
자체다.
그는 평소에는
소박하게 생활하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주는 따스함 감성을 지녔으며 곤경에 처한 숙녀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선을
넘는 사람에게는 단호히 대처하는 냉철함을 지녔다.
가히 완벽 그
자체라 말할 수 있는 인성의 소유자가 왜 그 나이까지 미혼으로 지냈는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동안
참을 수 없는 허영심으로 자신이 모든 사람의 은밀한 감정을 전부 알고 있다고 믿어왔다.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교만하게 모든 사람의 운명을 정해 주겠다고 감히 나서왔다.
그랬다가
모두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증명되지 않았는가(p571).
조용했던 시골
마을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며 평소와는 다른 활기가 생긴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에마 우드하우스는 그간 자신이 얼마나 어리 섞었는지를 깨닫는다.
자신의 오만함으로
해리엇 스미스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녀를 괴롭게 한다.
제인 오스틴이
말했듯 예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아가씨를 영 미워할 수만은 없는 건 세상물정 모르는 스물 한 살의 아가씨가 충분히 저지를 수 있는
수 있는 실수투성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오롯이
바라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하는 열망을 통해 성장해가는 에마를 보는 내가 왜 이리 뿌듯한지.
단순히 로맨스라
치부하기에는 굉장히 섬세하고 심오한,
당대의 결혼상을
엿볼 수 있는 『에마』를 읽으며 마치
내가 19세기 영국의
시골마을에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간질간질한 영국식
사고가 궁금하다면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