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과 도망치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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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하고 절망하는 가운데 자신과 지카라는 내일부터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p119).

 

10, 고작 초등학교 5학년인 지카라의 평온한 일상이 깨지는 건 단 한순간이었다. 아버지의 교통사고, 이건 누가 봐도 명명백백하게 지카라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동승했던 여배우와 불륜이란 꼬리표가 붙었고 그녀의 자살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매일같이 기자들이 찾아오고, 여배우의 극성팬과 소속사는 자카라와 그의 어머니 사나에를 쫓아다니며 협박해 두 모자는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지경이 된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소설 파란 하늘과 도망치다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두 모자의 가슴 아프지만 따뜻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든 사건의 원흉인 지카라의 아버지가 잠적해 지카라와 사나에가 총알받이가 된 거지만 아직도 그 둘에게 가해진 싸늘한 시선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로 보는 게 맞지 않나, 의아했다. 아마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잘못이 없음을. 그렇지만 누군가 원망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고 가장 힘없는 이들이 표적이 됐을 뿐이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두 모자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기위해 노력한다. 그들의 삶을 옥죄는 도쿄를 떠나 기나긴 여름을 맞이한다. 내일을 살아야하니까.

 

젊었을 때 용서되던 일도 나이를 먹은 지금은 용서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실수하거나 세상 물정에 어둡다며 질책을 받을까 봐 두려웠다(p169).

 

젊었을 적 극단 배우로 활동했지만 이젠 평범한 가정주부로 특별할 것 없는 잔잔한 일상을 살았던 사나에는 급작스럽게 세상 밖으로 떠밀려 나온다. 혼자라면 두려움에 떨었겠지만 어린 아들을 지켜야하는 어머니로서, 매 순간 고뇌한다.

 

사건이 보도된 이후, 시만토에 잠시 머무르지 않겠냐며 권하는 친구의 호의를 염치없는걸 알면서도 받아들인다.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라는 순진한 마음이었지만 그들을 추적하는 시선은 끈질겼다. 결국 도망치듯 시만토로 떠나 인적이 드문 섬 이에시마로 향하지만 드나드는 사람이 적은 한적한 바닷가마을에 외지인은 너무 눈에 띄었다. 벳푸에서 모래덮기꾼으로 일자리까지 얻어 정착하길 바랐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았고, 무엇을 기대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심정으로 센다이로 향한다.

 

이들의 행선지는 특별히 생각하고 정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어쩌다보니 일본 전역을 순례했달까. 그렇지만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호의를 받으며 적응해나간다. 아마 추적자가 없었더라면 이들의 삶은 훨씬 더 평탄했으리라.

 

의도하진 않았지만 지카라는 이번 여름, 훌쩍 성장했다. 어른과 달리 아이의 하루, 일주일, 한 달, 1년은 믿기지 않을 만큼 길다(p113)는 그녀의 생각처럼 수줍음 많던 아이는 점점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듬직한 아이로 자랐다. 엄마에게 이혼하지 말라며 울던 어린 아이는 엄마의 행복을 바라는 속 깊은 아이가 되었다. 응석만 부려도 모자랄 아이가 엄마를 위해 말을 삼키는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살아서 도망 다니고 있다니, 얼마나 다행이야(p349)”.

 

하루아침에 삶이 풍비박산이 났다. 어디를 가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지 못하는 두 모자의 신세가 가엾으면서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리라 꿈 꿀 수 있는 미래가 있기에 조금은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재가 지옥처럼 느껴질지라도 과거를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언제, 어떻게라도 재기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온정 넘치는 곳이다. 두 사람의 처지를 안쓰럽게 여겨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마음 쓰는 사람들,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꼭 다시 돌아오라며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기에 세상은 아직도 살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내일을 그리다보면 세 가족도 도쿄의 안락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 않을까 기대해본다. 무엇보다 더 이상 지카라가 자라지 않길 바란다.

 

삭막한 일상 속에서 따스함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부디 앞으로의 여정에도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기를(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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