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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5대 소설 수호전·금병매·홍루몽 편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나미 리쓰코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1월
평점 :
이나미 리쓰코의 『중국 5대 소설』은 지금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서유기』와『삼국지연의』를 상권에서 다루고 하권에 이르러 『수호전』, 『금병매』 와 『홍루몽』을 심층 탐구한다. 주제가 중국 5대소설인데 저자가 일본인이란 것이 주목할 만하다. 삼국지연의는 국내의 유수 작가들이 편역하여 1000만부 이상의 책이 팔렸으니 일본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가진다는 게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국내번역본 기준으로 6권의 수호전, 5권의 금병매, 7권의 홍루몽까지. 가히 중국 최고의 소설로 꼽힐 만큼 그 서사가 방대하다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독자는 드물 것이다. 『중국 5대 소설』 하편에서는 위 3권을 집중 분석하여 각 소설들이 어떤 특징이 있으며 어떤 부분들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날카롭게 분석한다. 해당 책의 내용을 모를지라도 이 책을 따라 읽다보면 어떤 내용인지 대충 감이 올뿐만 아니라 책 말미에 표제를 총 망라해 각 3권의 책이 어떤 스토리로 이어지는 지 유추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도 『수호전』도 기본적으로는 ‘남성 세계의 서사’이므로 남성 상호간의 관계성이 가장 중시된다(p60).
108명의 영웅 이야기가 기본 토대가 되는 수호전은 삼국지와 많은 공통점을 가진다. 무엇보다 천하를 재패하고자 하는 남성 중심적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소문’의 방식을 빌려 인물을 서술하는데 108명의 호걸들을 이끄는 ‘송강’과 괄괄한 호걸들의 만남에있어 이 장치는 극대화된다. 다만 훌륭한 인품을 가졌다기엔 송강의 캐릭터가 그리 선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 특별히 독자들이 환상을 가질 만큼 매력이 없다는 점을 꼽아 그를 중심인물이지만 사람들의 관계성을 맺기 위해 필요한 존재로 한정 짓는다. 처음부터 단독저자가 구성한 소설 아닌 설화를 모아 재담꾼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작품이기도 하다.
수호전에서 묘사된 여성들은 ‘악녀’가 많은데 남녀간의 자연스러운 연애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여자들만 그린 점을 미루어보아 남성과 여성의 관계성은 주목하지 않았다는 걸 볼 수 있다. 수호전에 등장한 악녀 반금련, 그녀는 내연남 서문경과 결탁해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지만 108호걸 중 한명인 시동생 무송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 대목에서 만약에 ‘서문경과 반금련이 살해당하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하에 『금병매』의 새로운 서사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다(p220)
마음에 들지 않는 남편을 처치하고, 시동생 무송의 복수도 피한 반금련이 서문경의 다섯 번째 부인으로 들어가 사랑과 권력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내용의 연속인 『금병매』는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굳이 저렇게까지 살아야하나 싶을 만큼 숨이 턱턱 막혔다. 신흥졸부상인 서문경의 집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로, 탐욕과 성욕의 화신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방탕한 서문경과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위한 반금련의 피나는 노력이 눈물겨울 지경이다. 반금련은 단순히 사랑에 눈이 먼 여자라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그녀의 악행은 풍족한 지참금을 가지지 못한 여인이 살아남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단순히 사랑이야기가 전부인 통속소설이라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데는 사회의 말하지 못한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어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중국 백화소설의 최고 걸작 『홍루몽』 (p386)
금병매의 열풍이 분지 150년이 지난 후, 중국 백화소설의 최고 걸작이라 부르는 홍루몽이 탄생했다. 졸부였던 서문경의 이야기와는 스케일이 다른, 에로틱의 끝판왕이자 무언가 기묘한 귀공자 가보옥과 가씨 일족이라는 무대를 설정한다. 등장인물만 무려 500여명이 넘을 만큼 엄청난 서사를 자랑하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비극이란 장치를 넣은 만큼 더욱더 독자들의 애간장을 녹인다.
한번쯤 이름은 들어봤지만 읽기는 쉽지 않은 중국의 대표문학들을 정리한 『중국 5대 소설』을 통해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서구문학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중국 문학으로 한번쯤 눈을 돌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남성 위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5대소설을 전부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중국 5대 소설』의 상, 하권을 섭렵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