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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김그린 옮김 / 모모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품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p152)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결국 ‘아브락사스’를
찾은 여정인걸까.
처음
읽는 책은 아니지만 이번에 재독하니 확실히 처음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상당히 거슬렸지만 중2병스러운
싱클레어가 정서적으로 힘겨워할 때,
그
곁에서 이끌어준 이는 데미안이었다.
이전에도,
지금도
항상 의문인 것은 왜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신경을 쓰는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싱클레어는
누가 봐도 어른인 척하는,
어른인
척 보이고 싶은 어린 아이였다.
소위
삥 뜯김을 당하는 크로머와의 에피소드는 싱클레어의 어리석음에 탄식했다.
데미안과
헤어지고 싱클레어가 벌인 온갖 비행청소년의 정석과도 같은 행위는 도대체 이 아이의 결핍이 무엇인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게 했다.
싱클레어의
중2병은
여전히 수습불가였지만 그의 영혼의 끌림이 ‘베아트리체’에서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으로
옮겨가기까지,
그
과정을 생각해봤다.
싱클레어가
베아트리체를 생각하며 한 상상은,
결국
데미안을 그리워해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인가.
왜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마치 운명의 실이 연결된 것처럼 만날 수 있는 거지?
데미안에게
싱클레어는 어떤 존재이며,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어떤 존재인가.
싱클레어는
‘아브락사스’를
찾은 걸까.
아브락삭스가
나타내는 건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괴로운 이유는 나 조차도 답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는 내가 하는 고민을 해봤으며 과연 이 답을 과연 알까,
싱클레어의
성장이 어디까지인지 나는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싱클레어의 방황하는 영혼이 점차 하나로 모아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갈 길
잃었던 유년시절의 그와 달리,
전쟁을
겪고 사랑하는 것들을 잃은 싱클레어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 전쟁이라는 잔혹한 수단이지만 한 사람을 성장시키는데 이보다 더 강력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책
뒤에 작품 해설집이 실려있는데 솔직히 읽어도 뭔 소린지 잘 모르겠다.
그저
싱클레어가 중2병을
극복하고 조금은 더 사람 구실하는 청년이 된다는 것,
그
과정에 방황도 많이 하지만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는 점에서 데미안이 성장소설의 대명사로 손꼽힌다는 걸
느꼈다.
도대체
데민안은 왜 싱클레어를 기꺼워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았다.
세계명작의
묘미는 읽을수록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모모북스에서
나온 데미안은 번역이 간결하고 깔끔해서 난해한 데미안을 다행히도 조금은 덜 난해하게 만들어줬다.
어쩌면
다음번에는 같은 문장이 또 다르게 와 닿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 읽은 데미안은 이전에는 그리 깊이 생각지 않은 ‘아브락사스’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재독,
삼독도
충분히 권할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