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의 미녀
백시종 지음 / 문예바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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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슨 한 많은 사연이 있었기에 그 당시 모든 생물들은 다 소멸되어 먼지조차 없어진 마당에 혼자 38백여 년을 견디며 기어이 그 육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남긴 것일까. (p74)

 

소금교회에서 파견한 의료선교사로 우루무치에서 활동하는 조진표는 누란의 미녀에 운명적인 끌림을 느꼈다. 광활한 중국의 유산 중에서도 그의 가슴에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 누란의 미녀였다. 그가 중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한 것도 누란의 미녀가 지대한 역할을 했으리. 누란의 미녀가 누구인가. 신장지역의 역사를 자신의 것이라 우기려던 한족의 야심을 꺾은 푸른 눈과 갈색 머리의 미라, 위구르족의 역사과 한족의 역사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그녀가 긴긴 세월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 바람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백시종 작가의 누란의 미녀는 지금도 꺼지지 않는 횃불처럼 지속되는 위구르족의 투쟁 속에서 우리 옛 선조들의 아픔을 되살펴보고 한국 교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누란의 미녀를 보기 위해 실크로드여행을 추진했던 것을 계기로 조진표는 우루무치에 터를 잡는다. 중국은 공식적인 선교가 허락되지 않기에 의사자격으로 머무르지만 하나님을 이 땅에 알리기 위한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우루무치의 터줏대감이었던 위구르족은 그들을 지배하기 위한 이주한 한족으로 인해 끊임없는 갈등을 겪는다. 위구르족은 한족으로부터 독립을 염원하지만 중국 당국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위구르족의 청년들은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고 희망이 없는 삶으로 인해 결국 마약의 늪에 빠져든다. 이런 그들을 위해 마약퇴치본부를 설립했던 바숍 교수의 약혼녀 쟈오서먼과 조진표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어쨌거나 쟈오셔먼은 그 순간 중국 공안 당국이 그토록 질겁하는 투르키스탄 독립국 국기를 들고 있었고, 총을 맞았으며, 아스팔트 큰길에서 주차장 골목으로 휘뚱휘뚱 뛰어 들어왔고, 정말 운명적으로 조진표와 정통으로 맞닥뜨렸으며, 결국 조진표 가슴 안으로 퍽 무너진 것이다. (p76-77)

 

조진표의 가슴을 뛰게 했던 누란의 미녀를 닮은 그녀, 쟈오셔먼을 직접 치료하면서 시작된 인연은 조진표를 우루무치로 불렀고 타지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 소금교회의 오카리나 팀이 파견된다. 타락한 다른 교회와는 달리 한국에서 가장 깨끗한 교회로 이름 높은 소금교회의 든든한 후원자 에벤에셀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시작된 이 여행은 순수한 선교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에벤에셀 그룹의 총수인 서근석 회장과 그 부인이 합류하고, 비기독교인 기타리스트까지 섭외해 출발한 스물세명의 선교팀은 가는 곳마다 삼엄한 공안의 감시에 고행길이 따로 없다. 위구르족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누란의 미녀를 유출해 방송한 팀이 외국인이다 보니 길목마다 임시검문소를 세우고 느릿느릿 사람을 잡아두는 공안의 횡포에도 항변하지 못한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왜 이렇게 승산 없는 위험한 싸움을 벌이는 걸까? 내가 알기에도 확률이 거의 없어 보이는데,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생명을 함부로 걸다니 ……. 누나도 그래, 까딱 잘못했으면 파리목숨 될 뻔 했잖아? 그점이 나로서는 이해가 안 돼!”

 

그건요, 위구르인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아니, 위구르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데 ……. 그 입장에서 한 발자국만 물러서면 가치 없는 일로 판단되니까요.” (p89)

 

100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이 했던 투쟁은 21세기의 위구르족이 여전히 하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밖에 더 되겠나 싶은 무모한 투쟁이지만 위구르인들은 그 숭고한 뜻을 꺾지 않는다. 위구르의 터전에서 실시한 핵 실험으로 중국은 핵무기 보유국가가 되었지만 위구르는 신성한 호수를 잃었다. 위구르의 명맥을 지킬 수 있는 이들은 위구르가 유일하다. 그렇기에 자칫 무모해 보이는 투쟁에도 위구르인들의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이유다.

 

단 한명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설교 때마다 강조하던 그가 어떻게 왕석국만은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인가. 왜 하나님의 명을 받은 선지자답지 않게 참으로 결정적인 오점을 남기는 것인가(p292).

 

계속되는 검문에 선교팀은 일정이 지체되었지만 성공적으로 오카리나 선교여행을 마쳤다. 이 자리에서 웃을 수 없는 건 소금교회의 오한수 목사의 추천으로 에벤에셀 그룹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왕성국이다. 그는 결국 끝까지 일정을 마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에벤에셀의 서근석 회장이 오카리나단을 이끌고 선교여행을 하고 있을 때, 에벤에셀의 비정규직 1,500명은 하루아침에 전원 해고처리 된다.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인가. 오히려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을 선동하는 이들에게 넘어간 자들이라 일축한다.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종으로 살았다 자부하는 서근석 회장과 오한수 목사, 하지만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이들의 외침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과연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며 치부할 일인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소금교회의 이중성에 조진표는 환멸을 느낀다.

 

조진표의 선택은 가히 파격적이다. 사실 나도 결말이 이렇게 흘러가리라 생각해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자유가 박탈된 억압된 세상에서, 또 다른 억압의 늪으로 들어가는 그의 선택이 답답하기도 하다. 정녕 이것이 최선인가? 어린양을 돌보기보단 그저 교회의 몸짓 불리기에만 눈이 먼 목회자들에게 실망하고, 위구르족으로 보며 일제로 인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선조들을 떠올렸겠지만 결말부에서 조금 갸우뚱했다. 사람은 언제나 최선을 선택하려 하지만 결국 모순된 선택을 하는, 어리석은 존재인 것인가. 어쩌면 누란의 미녀를 가슴에 품은 조진표의 삶은 이러한 길을 걷도록 예정된 것인가. 여러모로 복잡한 소설이다. 그렇지만 정말 순식간에 다 읽었다. 초반에는 교회를 찬양하는 소설인가 싶어 오죽하면 작가의 종교까지 찾아봤겠는가. 여러 가지 사건을 정말 매끄럽게 이어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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