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ㅣ 새움 세계문학
루이스 캐럴 지음, 안영 옮김 / 새움 / 2019년 10월
평점 :

제목 그대로 이상한 세계에 빠져들다
동심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화로 손꼽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분명 어렸을 때 애니메이션도 보고 동화책으로도 읽어봤던 것 같은데 어른이 돼서 진짜 책으로 읽어보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내가 알고 있던 앨리스의 내용이 진짜 앨리스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달까. 책은 한마디로 정신이 없다. 앨리스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만나는 사람도 많고 에피소드도 다양하다. 거기다 언어유희가 상당하다보니 뜬금없는 헛소리(?)에 맥락을 놓치는 경우도 빈번하다.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지, 제목 그대로 이상한 세계에 이상한 사람, 아니 생명체들을 만난다.
어른인척 하고 싶은 앨리스의 맥락 없는 아는 척하기 퍼레이드는 딱 그 나이 때 아이들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뭔가 어려운 단어를 쓰면서 뿌듯해하는 모습이 등장할 때마다 루이스 캐럴이 실제 앨리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얼마나 웃었을까 상상이 된다.
왜 인지 모르지만 항상 늦었다고 종종거리는 토끼, 숫자는 끔찍이 싫어하지만 교훈 말하기를 즐기는 공작부인,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체셔 고양이, 뭐만 하면 맨날 사형이라고 협박하는 여왕 등등. 정말 보면 볼수록 이상한 생명체들만 있는 곳에서 조금 호기심 많은 평범한 소녀 앨리스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생각해본다면 내가 책을 읽으면서 정신이 혼미해 지는 게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도 한다.
“모두가 이겼어, 그러니 전원 상을 받아야 해. (p46)”
루이스 캐럴이 내가 생각한 의도로 이 에피소드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앨리스의 이상한 세계가 오히려 우리의 실제 세상보다 더 정상적인 경우도 있다. 물론 모두에게 주는 포상은 앨리스의 삥을 뜯어내는 거지만 코커스 경주에서 도도새가 말한 이 문장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승자와 패자를 따로 가리지 않는다. 게임의 룰도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이 맥락이 여왕 앞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의아하지만. 아무튼 동물도 말할 수 있고 승자와 패자를 가리지 않는 이상한 나라, 매일 이상한 세계를 모험하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냈을 앨리스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떤 세상을 상상해냈을지 궁금해진다.
이젠 너무 커버려서, 더 이상 이상한 나라의 동심을 온전히 즐길 수 없지만 어렸을 때 진짜 앨리스를 알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알던 앨리스가 진짜 앨리스의 원작이 아니었다는 게 조금은 아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