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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 ㅣ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2
호메로스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17년 9월
평점 :

지혜롭고 현명한 오디세우스는 어디 갔는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뛰어난 서사시로 명성이 자자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기원전 8세기의 인물임에도 그가 남긴 작품은 대대손손 찬사를 받아 2019년 현재까지도 이어졌다. 일리아스를 읽으며 아무리 영웅이라 해봤자 고작 인간은 신들의 장기 말이라는 다소 현실적이면서도 씁쓸한 교훈을 얻었는데 오디세우스는 도저히 모르겠다. 신의 가호를 받은 인간은 그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홀로 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인가? 지혜롭고 현명한 오디세우스를 내놓아라!!
오디세우스, 그는 아테나 여신의 비호를 받는 영웅으로 트로이 전쟁의 승전보를 울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아무런 사고도 치지 않고 집으로 곱게 간다면 무탈했을 그의 인생은 호기심과 교만이란 불운으로 인해 망망대해를 떠도는 불쌍한 영혼으로 전락하고 만다. 트로이 전쟁에서의 10년, 귀향길에서의 10년, 무려 20년이란 세월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한 그는 갖은 고통을 받으며 고향을 그리워하는데 하나하나 따져보자면 자업자득이다. 신들의 이야기만 막장인줄 알았는데 영웅들의 이야기 또한 별반 다를 바 없는 듯하다.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지만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드문 대서사시의 시작을 진형준 교수의 축역본으로 읽으니 술술 읽힌다. 막장스러운 내용과 별개로 고전이 가독성이 좋다니! 가독성마저 좋지 않았다면 오디세우스를 욕하다가 중도하차 했을 것 같다.
기원전을 배경으로 하는 옛날이야기를 현대식으로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수지만 읽다보면 대환장하는 에피소드가 너무 많다. 열입곱 살이나 된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그 나이 먹을 때까지 왕권을 바로세우지 않고 뭐했는가! 영웅도 자식만큼은 제 맘대로 할 수 없다는 대목을 보여준 건가, 자기 어머니가 위협당하고 가문의 재산이 축나고 있는데 그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 아테나 여신이 겨우겨우 사람답게 만들 때까지 아버지만 기다리며 두려워할 뿐, 뭘 해야 할지도 모른다.
오디세우스의 실착은 호기심이다.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말라고!! 신들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경고한 에피소드는 여지없다.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한다. 조언을 해줘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나 그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혼자만 살아남는다. 아마 나의 처지가 영문도 모르고 죽어갔을 군사1일 확률이 높다보니 이 부분에서 더 분노하나싶다. 거인 키클롭스와의 에피소드는 누가 정녕 악인인가? 남의 집에 쳐들어가 음식을 훔친 것도 모자라 선물을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리다니! 다시 말하지만 지혜롭고 현명한 오디세우스를 알려주세요. 물론 중간 중간 기지를 보여 목숨을 부지하는데 애당초 하지 말란 걸 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 너무 많다. 우여곡절 끝에 고향에 당도했을 때 오죽했으면 그를 수호했던 아테나 여신이 “그대는 참으로 꾀가 많은 사람이야! … (중략) … 자기 고향에 돌아와 있으면서도 말을 꾸며내고 있다니!(p128)” 라며 경고했겠는가. 더군다나 20년 넘게 강제로 수절한 아내를 믿지 못하고 시험이나 하고. 정말 너란 남자..... 최악이야.
물론 이 모든 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이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일 뿐 당대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우리가 막장드라마 보듯 재밌게 봤을 것 같긴 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며 끝까지 귀향의 의지를 보인 강인한 영웅 이야기, 얼핏 들으면 참 멋진데.....
왜 오디세우스가 지금까지도 읽히고 사랑받을지, 왜 수 많은 화가들이 오디세우스를 그렸는지 생각해보며 읽는다면 인간이 좋아하는 막장 스타일의 이야기가 참 변함없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내가 아무리 호메로스를 혹평한다 해도 이미 수많은 평론가들이 찬사를 보낸 검증된 이야기인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전이 두려워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화컬렉션으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 함께 오디세우스를 욕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