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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프라도 차오, 빌바오 - 유쾌한 스페인 미술관 여행
최상운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9년 7월
평점 :

마드리드에서 세비야까지, 스페인 미술관 기행
지금까지 내게 있어 스페인의 예술은 비주류라는 인상이 강했다. 예술에 문외한이기도 했거니와 스페인 미술의 황금시대는 이탈리아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예술가들을 적극 초빙한 후 이룩해 낼 수 있던 결과라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페인의 많은 예술가들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그런데 스페인의 진정한 예술을 알고 느끼려면 ‘황금시대’의 개막 이후를 살펴봐야 한다는 걸 느꼈다. 특히 스페인의 국민화가 ‘고야’는 고전을 넘어 근대의 개막을 알린 선두주자였다. 많은 사랑을 받는 화가인 만큼 고야의 작품은 스페인 전역에 퍼져있는데 어느 미술관에서 어떤 고야를 만날 수 있는지 최상운 작가의 <올라, 프라도, 차오, 빌바오>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유럽의 3대 미술관이라 불리는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고야의 ‘옷 벗은 마하’와 ‘옷 입은 마하’ 두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고급스러운 책 속지를 꼽을 수 있는데 덕분에 실제 미술관에 가지 않고도 작품의 생생함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책에 삽입된 마하부인의 고혹스러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같은 모델을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해낸 그의 천재성에 감탄한다. 같은 표정, 같은 포즈인데 옷의 유무로 모델의 포스가 달라지니, 막눈인 내가 보더라도 감탄할 수 밖에 없다. 당시 왕실의 비정한 권력을 적나라하게 담은 ‘카를로스 4세 가족 초상화’ 는 정치권력의 힘이 누구에게 있는지, 가족이지만 바스라질 것 같은 위태위태한 모습을 시선을 통해 표현해낸다. 고야의 ‘거인’ ‘5월2일’과 같은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만큼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에 간다면 꼭 들려야 할 대표 관광지이다.
같은 도시에 위치한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도 볼거리가 넘친다. 책에서는 각 층마다, 각 전시실마다 친절하게 대표 작품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드가의 ‘춤 추는 댄서’였다. 자연 풍경이 아닌 사람을 표현하는 인상파 작가의 작품이 얼마나 몽환적인지 이 그림을 통해 느껴볼 수 있다.

도시 자체가 가우디의 걸작으로 꾸려진 바르셀로나는 건축물의 천국이다. 사그리다 파밀리아의 웅장함에 압도되며 그 정교함과 섬세함에 감탄하게 된다. 구엘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바르셀로나의 전경을 내려다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어디를 가더라도 가우디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도시다. 카사 밀라의 독특함과 여러 개성있는 건축물들의 조화는 바르셀로나를 더 빛나게 해준다. 바르셀로나 거리가 미술관 그 자체였다면 호안 미로 미술관은 현대 예술의 거장을 만나볼 수 있다. 스페인이 아닌 카탈루냐의 화가로 기억되고 싶었던 그는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건물 입구부터 특별함이 넘치는 호안 미로 미술관은 회화, 조각, 태피스트리, 판화, 데생 등 다양한 종류의 예술 작품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다.
스페인 북쪽 빌바오 지역에 위치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인구 35만의 작은 도시에 1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해 ‘빌바오 효과’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훌륭한 미술관의 존재만으로도 관람객의 발길을 끌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낸 것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그 외관부터 상당히 공을 들였는데 물고기에 영감을 얻어 프랭크 게리가 건축했다. 관내 전시된 작가들의 이름만으로도 구겐하임 미술관의 쟁쟁함을 느낄 수 있다.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안셀름 키퍼, 앤드 워홀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바스크 지방 작가들의 그림도 걸려있다. 제프 쿤스의 튤립, 루이즈 부르주아의 마망과 같은 작품이 외부에서부터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국적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만큼 스페인여행에서 빌바오는 빼놓지 말고 들려야 할 도시가 되었다.
감히 스페인의 예술을 비주류라 여겼다니, 고야, 피카소, 가우디와 같은 분들이 얼마나 통탄하겠는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설프게 갖는 지식이 얼마나 위험한를 느꼈다.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상세한 설명과 그림이 어우러진 <올라, 프라도, 차오, 빌바오>는 스페인 예술에 대해 가졌던 잘못된 편견을 완전히 뒤엎었다. 도시 곳곳에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들이 즐비한 곳을 미처 알지 못했다니! 스페인 미술의 진가를 알고 싶다면 우선 이 책으로 시작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