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죽였을까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7
하마오 시로.기기 다카타로 지음, 조찬희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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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들이여, 바로 지금 나는 진실을 말한다.

너희들은 죄 없는 남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나는 분명 무죄다(p56).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연인의 배신에 한을 품고 끝내 허락되지 않은 악행을 저지른 한 남자가 있다. 애당초 둘의 관계는 떳떳할 수 없는 불륜.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남은 자의 진술과 자백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 남자는 자신의 죗값을 치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런데, 정말 그 남자가 죽였을까?

 

법조인 출신의 하마오 시로는 법률적 탐정소설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냈다. 자신의 법률적 지식을 가감 없이 발휘해 법률적 판단이 과연 진실일까? 라는 의문을 던진다. 누가 보더라도 앞뒤 관계가 명확해 보이는 단순 치정사건, 범인은 이미 특정 지어진 상태에서 수사는 순탄하게 흘러간다. 이때 판사의 판결은 거침없다. 죄인이 죗값을 치루는 것, 이보다 더 중요한 정의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판사는 언제나 옳은가?

 

하마오 시로의 또 다른 단편 소설, <무고하게 죽은 덴이치보>는 명부교로 명성을 떨친 한 남자를 관찰자 시선으로 바라보는 화자가 등장한다. 부교의 뛰어난 지혜는 언제나 옳고 사람들은 그의 판결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그의 손으로 잘못된 판결을 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부교는 고뇌에 빠지지만 이내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죄인이기 때문에 처형한 것이 아니라, 부교님이 처형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악인이자 죄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p99).

 

사람이 같은 사람을 판단하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은 없다. 자신의 판단에 옳고 그름을 넘어 맹목적으로 자신을 추앙하는 이들의 신앙심을 알아차렸을 때, 부교는 그 권력을 악용한다. 아니, 적어도 그의 입장에서 그는 정의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래서 덴이치보라는 사내는 억울하게도 거짓말쟁이로 세상에 길이남아 처형당한다.

 

법정소설의 쓴맛이 그대로 남아있다. 소위 지식인이라 불리는 이들의 권한이 남용된다면 얼마나 끔찍한 세상이 도래할지, 하마오 시로는 말한다. 그는 과연 선이라 부를 수 있는가? 법의 허점과 인간 내면의 추악함을 고스란히 담은 그의 소설을 읽으며 소름끼치도록,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에 뒤지지 않는 의사 출신 소설가 기기 다카타로는 사람의 인체를 다루는 의사가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꼽는다.

 

연구자로서 작은 호기심, 혹은 선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걸 <잠자는 인형>을 통해 보여준다. 처음 시작은 그 의도가 아니었을지언정, 새로운 발견을 향한 특수한 지식을 가진 이들의 열망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 그 집착의 끝을 보여준다.

 

그런데, 하마오 시로와 기기 덴이치로의 소설 속 화자는 모두 사건의 진실을 알았음에도 덮는다. 이제 와서 말해봤자 부질없다 생각하는 체념일까, 아니면 소설이 어디까지나 소설이 아닌, 어쩌면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사실이기에 차마 밝힐 수 없는 것일까. 어쩌면 현실이 소설보다 더 끔찍하다는 걸 은연중에 내포하는 게 아닐까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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