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배심원
윤홍기 지음 / 연담L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윤진하는 같은 처지의 다른 말단 검사들처럼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이루어질 수 없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p40).

 

법조계의 고질적인 문제, 라고 해야할까나. 훤칠한 얼굴에 수려한 말빨, 타고난 워커홀릭. 그렇지만 소위 엘리트라인에 낄 수 없는 비주류 검사 윤진하는 국민참여재판 전담검사로 활약하고 있다. 호소력 짙은 그의 외침은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높은 승률을 기록하고 언젠가는 인지부서로의 입성을 꿈꾸지만 윤진하 자신도 불가능한 꿈이라는 걸 얼핏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발버둥 친다. 여느 때처럼 사건을 준비하며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명단을 살펴보는데, 어딘지 익숙한 이름에 그의 시선이 멈췄다.

 

장석주, 62, 남자, 무직, 화양도 영원시

 

인권 변호사출신 전직대통령 장석주도 국민의 의무인 배심원 소환을 피해갈 순 없었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로 인기가 높은 장석주의 배심원 소환 통보는 전 국민적 이슈가 되고 모든 언론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인다. 노숙자가 가출청소년을 죽음에 이르게 했으나 그 의도성은 찾아 볼 수 없는 과실치사로 기소된 사건인 만큼 윤진하는 장석주의 배심원 선정을 기피하려 했지만 유독 검사 측에 불리하게 선정되는 배심원들을 기피하다보니 결국 장석주를 배제하지 못한다.

 

전직 대통령을 이긴 검사라……, 타이틀 괜찮네. 괜찮아 (p72).

 

장석주의 배심원 선정은 막지 못했지만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전국구 스타로 이름을 알려 중수부입성을 꿈꾸는 윤진하. 피고 강윤호의 범행이 명명백백한 만큼 승기를 자신했다. 변시 출신 꼬꼬마 변호사 김수민의 어설픔으로는 이미 자백까지 한 마당에 전세를 뒤집기 어렵다 판단했지만 ‘7번 배심원으로 불리는 장석주의 개입으로 쉽게 끝날 사건은 현장검증에 이르고, 강윤호는 범죄 사실을 전면 부인한다.

 

변호사가 피고인을 못 믿으면 설령 무죄여도 유죄가 되는 겁니다. 아시겠죠, 김 변호사님? (p145).

 

노숙자들 사이에서도 소위 깡패라 불릴 만큼 악명 높은 강윤호의 범행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질이라는 평이 대세였다. 그렇기에 범행의 의도성을 가지고 다퉜던 사건은 강윤호의 자백에 경찰에서의 강압성이 확인 된 만큼 전면 백지화되지만, 검찰 측은 이를 이용해 수사권 조정이라는 카드를 쓴다.

 

 

사건이 심화되면서 경험이 일천한 국선변호사 김수민에게도 든든한 조력자가 생긴다. 로스쿨시절 은사였던 민철기의 개입으로 변호사다워진 김수민은 자신의 피고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점점 성장해간다.

 

7번 배심원 장석주의 활약으로 명명백백했던 강윤호 사건은 전세를 달리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방해공작으로 오히려 장석주를 옭아매는데.....

 

평범했던 이 사건은 7번 배심원 장석주로 인해 전 국민의 시선을 한 눈에 받는 핫한 사건이 됐다. 하지만 이는 장석주 조차 알지 못한 계략이 판치는 전초전으로 이용된다. 장석주의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은 다시 혼돈에 빠지고 결국 그는 배심원을 사퇴하는데...... 청렴결백하고 서민적인 대통령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의 뇌물수수 혐의는 지지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기는데, 장석주를 향해 칼날을 겨눈 검찰과 이를 저지하는 머리싸움은 놓칠 수 없는 묘미다.

 

언제나처럼 가늘고 길게, 그렇게 검사로서 늙어서 검사로서 정년퇴임하는 것. 그게 바로 검사 윤진하의 여전하면서도 일관된 목표다 (p372).

 

책의 제목은 <일곱번째 배심원>, 책의 줄거리 요약은 장석주의 이야기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장석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가가 마지막에 말했듯 그는 윤진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작가에게 있어 이 책의 주인공은 윤진하였다. 사실 나도 윤진하에게 더 많이 공감했고 그의 승리를 바랐다.

 

그가 특별하게 선하고 정의감이 있어서는 아니다. 적당한 상명하복, 자신에게 불이익이 갈 법한 일은 알아도 못 들은 척, 두 눈과 귀를 막는다. 조금이라도 실세 라인에 가까워지기 위해 자존심을 내던지고 잘못된 걸 알아도 굳이 바로잡기보단 스리슬쩍 묻어가길 바라는. 이보다 더 보통사람같은 소설 속 주인공이 몇이나 있을까. 그 역시 강윤호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짐작하지만 내부 고발자가 될 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평탄하게 검사로 살고 싶은 욕망과 범인의 결백을 알고도 무시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의 고민은 그만의 고민이 아닌 우리의 고민이자 작가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였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검사 윤진하는 그의 방식으로 사건을 풀어나간다. ‘부끄러움을 알기에 그가 처음 목표했던 만큼 높은 자리에 갈 수 있는 위인이 아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대단히 정의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수치심을 모르진 않는다. 윤진하 만큼의 윤리적 기준이라도 가진 어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직시하게 한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이 상황이라면?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모두의 행동이 이해되는 씁쓸한 소설이다. 결국 부패의 근원은 영영 제거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450페이지의 소설이지만 순식간에 읽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 장면은 작가가 의도한 걸까 아니면 별 의미가 없는 걸까. 고작 소설이지만 나 역시 언론의 여론전에 갈대처럼 마음이 흔들리며 선동되기도 했다. 다만 대통령 장석주의 캐릭터가 너무 비현실적이라 아쉬웠다. 현실에서의 장석주는 조금 더 영악하고 실리적인 사람이지 않을까. 소설이지만 더 없이 현실 같은 법정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