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 - 예술을 부정한 예술가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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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

 

내게 있어 마르셀 뒤샹은 괴짜 예술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교양으로 현대예술론을 들으며 그에 대해 탐구해 본적이 있다. 교수님께선 기존의 개념을 뒤흔드는 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를 추켜세웠지만 작품이라 부르기 민망한 것에 의미만 담으면 예술이라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었다.

 

김광우 작가의 <마르셀 뒤샹>은 나처럼 얕게 뒤샹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의 예술이 남성용 소변기를 뒤집어 둔 ‘샘’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준다. 샘의 탄생 이전과 이후, 그는 언제나 예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기존의 관념에 순응하기 보단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의도가 아니었을지라도 후세의 사람들은 그를 “미래 미술의 조상, 다다의 아버지, 팝아트의 아버지, 포스트 모니더즘의 선구자(p318)”라고 부른다.

 

1887년 프랑스 루앙 근교의 블랭빌-크레봉에서 육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마르셀 뒤샹은 형들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예술가의 길을 꿈꾼다. 그의 초기 예술은 세잔과 야수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1911년 입체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는 예술가에게 환영받지 못한 채 전시가 거부되기도 한다. ‘기차를 탄 슬픈 청년’, ‘처녀로부터 신부에 이르는 길’, ‘자전거 바퀴’등 새로움을 갈망했던 화단의 이단아는 보금자리였던 파리를 떠나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뉴욕에 가는 것이 아니라 파리를 떠나는 것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빅토르 위고의 손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영국의 젊은이들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손자들이라 생각한다. …(중략)… 그들은 자신들의 창의력을 산출하려고 하더라도 파괴할 수 없는 전통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이런 점이 미국에는 없다(p94).

 

1915년 6월 15일, 파리의 예술가는 무한한 가능성의 도시 뉴욕으로 떠났다. 미국의 철물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그에게는 처음 본 형태의 ‘눈삽’을 구매하고 물감으로 <부러진 팔에 앞서>란 제목을 붙여준 그는 특이하게도 ‘from Marcel Duchamp 1915’라고 서명한다. 이는 뒤샹의 상징과도 같은 레디메이드의 최초의 인식이다. 기성품에 서명을 한다고 그것이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는가? 이 논쟁은 현대 미술사에 해묵은 논쟁으로 남아있다. 1917년, 독립예술가협회 전시장에 기이한 물건이 도착했다. 흰 도기로 된 남성용 소변기 가장자리에 붓으로 R.Mutt라고 새겨진 오브제 소변기는 집행부에 혼돈을 일으켰고 훗날 ‘샘’이라 불리는 이 작품은 결국 전시가 거부된다.

 

 

 

1918년, ‘너는 나를’이란 작품을 마지막으로 그는 전통적인 그림 그리기를 멈춘다. 그는 왜 그림을 그리지 않냐는 질문을 숫하게 받아왔는데 “마음만 먹으면 오늘 밤이라도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p262)”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왜 그는 예술의 개념을 탈피하고 과연 이것이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논란이 될 작품들을 만들었을까? ‘큰 유리’, ‘휴대용 미술관’, 주어진 것‘와 같은 그의 작품은 파란을 불렀고 그를 수식하는 단어들도 점점 많아졌다. “어떤 것도 미술이 될 수 있고, 누구라도 미술을 행위 할 수 있다(p321)”는 미학을 가능케 한 그의 시도는 사람들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란 원초적인 질문을 물었다.

 

체스 덕후의 권태로움

 

그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체스에 할애했다. 대회에 나가 입상할 정도로 훌륭한 실력을 지녔다보니 그와 친분을 쌓고 싶은 예술가들은 체스를 빙자해 접근하기도 했다. 그의 여자관계는 상당히 복잡하며 비합법적인 관계도 서슴지 않았다. 나는 파란만장한 그의 삶을 보며 예술가의 권태로움을 느꼈다. 형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소년은 독특해야 했고, 그의 창의력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 사람의 일생을 고작 한 권의 책으로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사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으며 그의 결핍과 권태로움이 뒤샹이란 예술가를 탄생시킨 게 아닐까 싶었다.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외로워보였다. 그 외로움이 성적인 집착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보통의 사람들은 집착하지 않는 것에 그가 남다른 통찰력과 관찰력을 지닐 수 있었던 건 그의 천재성 컸겠지만 무엇을 하더라도 만족되지 않는 내면의 결핍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뉴욕을 예술의 도시로 만든 그는 ‘더구나 그건 항상 죽어가는 그 밖의 사람들이다(p312)’는 비문과 함께 고향 인근에 묻혔다.

 

어디까지 예술이라 생각하는가?

 

나는 아직도 ‘샘’을 예술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작 해봤자 소변기에 이름을 새기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게 예술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텐데! 라는 오만한 생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뒤샹과 교류가 깊던 존 케이지의 4분33초를 음악으로 볼 수 없듯이 나의 얄팍한 편견은 내 시야를 가린다. 하지만 뒤샹이 하루아침에, 아무런 전조도 없이 ‘샘’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걸 인정한다. <마르셀 뒤샹>을 읽으면서 그의 삶은 철저하게 예술로 시작해 예술로 끝났으며, 예술을 보여주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예술가의 작품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셀 뒤샹>을 읽으며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재정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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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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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그림 삽입으로 뒤샹의 이해도 상승,

고퀄리티 재질의 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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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내용의 반복

등장인물이 많아 헷갈림

 

마르셀 뒤샹의 작품이 왜 유명한지 궁금한 사람에게 읽어보길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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