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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ㅣ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션 19
앙드레 지드 지음, 박효은 옮김 / 별글 / 2019년 7월
평점 :

밀당의 고수 혹은 고구마 그 자체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손꼽히는 세계 명작이지만 대게 고전 명작들처럼 대략적인 줄거리만 알 뿐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없었다. 200페이지의 소설책이지만 행간이 넓다보니 순식간에 읽었지만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턱턱 막혔다. 세상에, 누가 이 둘 좀 사랑하게 해주세요!! 여자 주인공 알리사는 세상 모든 밀당 스킬을 본능적으로 터득한 건지 보는 내가 다 애가 탔다. 분명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리쏭한 그녀의 태도는 남자 주인공 제롬을 희대의 미련남 혹은 집착남으로 만든다.
이젠 사랑해도 사랑해선 안 되고 보고파도 만나선 안 되고 ♬
이 책을 한 줄의 가사로 떠올린다면 별과 나윤권의 ‘안부’가 아닐까.
사실 처음부터 석연치 않았다. 어린 아이들의 치기인 것인가? 알리사와 제롬은 분명 서로에게 관심이 있었다.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알리사는 동생 쥘리에트가 제롬에게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거절한다. 흔하디흔한 로맨스 소설이라면 주인공 커플에게 아주 작은 장애물이었겠지만 독자는 끝끝내 사이다를 마시지 못한다.
알리사와 제롬을 가로막는 벽은 하찮은 세속 따위가 아니다. 희망에 찼던 제롬을 거절한 알리사의 편지에서 그녀의 이상과 열망을 엿볼 수 있다. 감히 인간은 알 수 없는 세상 저 너머의 좁은 문을 그녀는 통과하고 싶은 것이다. 현세의 사랑과 좁은 문이 대체 무슨 연관인지 신앙인이 아니다보니 도통 이해할 수가 없지만 알리사는 제롬에서 ‘우리가 사랑을 통해 사랑보다 더 휼륭한 게 있다는 걸 서로 알아차리게 된 그날부터 늦어버렸다는(p173)’ 말로 그의 마음을 애써 무시한다. 아니 제롬은 모른다니까?? 왜 우리라고 해?? 세상에 이렇게 불쌍하기 그지없는 남자 주인공이라니.
그녀 외에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지고지순한 남자, 그보다는 더 높은 무언가를 열망하는 여자의 사랑은 예견된 비극이겠지. 처음부터 여지를 주지 말지는, 세상 밀당의 고수 알리사가 원망스러워진다.
이 책이 나타내는 것이 ‘신비적인 금욕주의’라는데, 너무 신비로 워서 나 같은 일반인은 참 이해할 수 없는 여자 주인공이었다. 그녀와 같은 이상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알리사가 아이돌이 되는 건가. 굳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제롬이 안타까운 소설로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좁은 문’이란 알 수 없는 신앙적 이상이 궁금한 사람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