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파리행 - 조선 여자, 나혜석의 구미 유람기
나혜석 지음, 구선아 엮음 / 알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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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나간 한 여인의 예견된 비극

 

1927, 혼란하기 그지없는 시대였을 테다. 소위 문화 통치라는 기민행위로 조선 민중을 박해한 일제의 만행이 한반도에 울려 퍼질 때, 신여성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여성의 최초라는 수식어는 모조리 독점하고 있는 그녀, 나혜석. 수원의 딸 부자집에서 태어나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그녀의 행보는 파격적인 역사 그 자체였다. 구미유람을 떠난 1927년이 그녀의 인생의 절정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중국을 거쳐 러시아를 지나 도착한 유럽. 스위스를 보며 우리나라 강원도의 관광산업을 떠올리고 파리에서 머문 부인에게 배운 여성의 의미.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예술가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고야처럼 죽기를 바랐던 그녀. 훗날 우리는 그녀를 최초의 페미니스트라고 부른다. 20세기의 사람, 아니 21세기의 사람들도 그녀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20세기의 조선 여인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갔을 때. 조선 여인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유럽의 여자들을 보며 얼마나 문화적 충격을 받았을까.

 

구미유람의 감상이 담긴 <꽃의 파리행>을 읽으며 그동안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 했던 그 마음, 잠시 접어두게 된다. 배울 만큼 배우고 거리낄 것 없었던 그녀가 새로운 세상을 보고 와서 얼마나 살기 힘들었을까. 21세기의 현대인도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유람길에 올라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아는 게 많았기에 그녀의 말년이 비극적이었을까.

 

가는 곳마다 그녀는 사람을 보고 예술을 찾았다. 자신의 작품 활동이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했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자신을 만들어갔다. 나혜석다움이 무엇인지를 고민했기에 세상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비운의 예술가. 그녀를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그는 죽었다. 그러나 살았다. 그는 없다. 그러나 그의 걸작은 무수히 있다. 나는 이 묘를 보고, 그 위에 그 걸작을 볼 때 이상이 커졌다. 부러웠고 나도 가능성이 있을 듯 생각났다(p164). - 고야의 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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