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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 강의 - 정의롭고 좋은 삶에 관한 이야기
이종환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평점 :

고전의 진수, 플라톤의 국가
분명 서양 철학을 교양으로 들으면서 플라톤을 살짝 배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수많은 철학자 중 한명으로 배웠던 그의 사상을 지금에 와서 기억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나보다. 예전부터 꼭 읽어 보고는 싶었지만 감히 도전하지 못했던 플라톤의 국가, 이종환 교수님의 <플라톤 국가 강의>는 국가를 원전으로 번역한 것이 아닌 제목 그대로 국가에 대한 해설이 곁들어진 책이다. 플라톤의 국가를 강의로 한다면 매 주차마다 이런 내용을 다루겠지라는 생각으로 흐름을 따라 읽었다.
철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기에 철학자들에겐 다소 상식이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배경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플라톤이 이상적인 국가를 그리며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책을 썼다는 것 까진 알았지만 그 책의 서두가 상당히 구체적인 점, 마치 문학 소설 형태로 시작된다는 건 처음 알았다. 저자는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첫 부분을 예시로 들어 두 철학책의 차이점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다.
플라톤이 어느 시기에 국가를 썼으며 왜 국가를 썼는지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새로운 상식을 얻어간다. 단순히 원문으로, 혹은 내용에 대한 해석본으로만 읽었다면 국가가 쓰인 배경을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는데 그들의 죽음 이후 썼을 것으로 저자는 추측한다. 기원전 432년경 벤디스 여신의 축제날 밤, 저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 동료들과 함께 피레우스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밤샘토론을 한다.
책에서 설명한 소크라테스식 논증법을 일일이 따라가는 데는 내 이해력의 한계가 있다 보니 꼬투리 잡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비록 저자는 아니라고 하지만 말이다. ‘정의’가 무엇인지 끝장토론을 하던 이들은 소크레테스에게 회심의 한방을 날린다. 왜 정의로운 사람은 부정의한 사람보다 행복하지 않는가. 저자에 의하면 부정의한 국가 권력에 희생되었던 소크라테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정의를 지켜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 이 책의 흐름이라는 데 마지막 장에서의 에르 이야기는 저자의 염려처럼 결국 죽음 이후의 삶으로 현재의 선행을 보상받으라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하지만 소크라테스, 아니 플라톤도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지 못한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은 내가 플라톤의 국가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당장 우리 집에 책이 없다는 것이다. 각 장마다 플라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이걸 학자들은 혹은 저자는 어떻게 해석하며 지금 우리 현실에 빗대어 예시들을 설명하는 방식은 좋았지만 원문번역본으로 읽어본 적이 없으니 정확히 이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없어 뉘앙스의 차이를 느껴볼 수 없다. 누군가 설명해주는 글과 내가 바로 읽으면서 느끼는 글은 조금은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일일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어도 따라가기가 벅찼다. 한 가지 확실한건 내가 원문번역본으로 바로 읽었다면 저자가 염려하는 대로 내 맘대로 국가를 해석해서 이게 뭐야? 이게 왜 유명하다고? 라며 타박을 했을 거란 거다.
플라톤의 국가를 읽어보고는 싶지만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국가가 대충 어떤 내용이며 소크라테스가 어떤 논지를 펼쳤는지 누군가 쉽게 설명해주었으면 한다면 이종환 교수의 <플라톤 국가 강의>는 적격일 것이다. 원문번역본을 한번 읽고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