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 성격 급한 뉴요커, 고대 철학의 지혜를 만나다
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석기용 옮김 / 든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스토아주의자로 산다는 것

 

무슨무슨 철학, 무슨무슨 주의자,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고는 하지만 철학은 여전히 내게 접근하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있다. 요즘이야 철학을 삶과 결부시켜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만 근본적으로 어차피 답이 없는 논쟁을 끊임없이 소모전처럼 해야 한다는 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스토아철학, 그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스토아주의자들이 왜 그것에 매료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사실 스토아철학이 가진 두드러진 특성조차 이해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거지만 말이다.

 

신이시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제게 허락하소서.

 

개인적으로 내가 참 좋아하는 구절이다. 5도살장과 미움 받을 용기에서 인용하면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문구는 평온을 비는 기도로 스토아철학이 무엇인지 가장 잘 함축해 놓지 않았나싶다.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의 저자 마시모 피글리우치는 스토아철학의 거장 에픽테토스의 철학관을 서술하며 스토아주의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전하는데,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결국 저 평온을 비는 기도에 다 포함되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여 할 수 없는 것에 치중하여 삶에 절망하지 말 것. 이는 자칫하면 조금 어렵고 힘든 일이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쉽게 포기하는 패배주의를 양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토아 철학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이는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별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고하며, 스토아주의자란 가면에 숨어 하기 싫은 일을 회피하지 않는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정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결과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행동하기를 권한다. 이런 그들의 태도가 사회 정의에 소극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에는 그 누구보다도 선봉장에 서려는 스토아주의야 말로 실천하는 학문인 것이다. 언제나 어려운 이슈는,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다.

 

내가 책을 통해 개인적으로 이해한 것은 자신의 감정에 너무 매몰되지 않는 것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기준이 아닐까 싶다.

 

소아마비로 장애를 앓는 로렌스의 이야기는 스토아주의자의 삶의 태도를 명확히 정의해준다. 직면한 문제를 걱정하기 보다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가 행위의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또한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 나를 슬프게 할 것이다. 남들은 평온하게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와 같은 신세한탄은 잠시 나의 기분을 돋워 줄지 언정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분별하며 최선을 다해 달려가며 사는 것, 이것이야 말로 스토아주의자들이 말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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