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광해와 이순신
정호영 지음 / 하다(HadA) / 2019년 2월
평점 :

<광해와 이순신>은 읽는 내내 슬프면서도 통쾌했다. 임진왜란의 고달픈 여정을 담았지만 비겁한 이들의 변명이 담긴 책이 아니다. 국운이 기운 나라를 어떻게든 살리려 애쓰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단지 임금이란 이유로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백성을 위한 척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억지 감동도 담지 않았다. 작중에서 선조는 비겁했고 쓸모없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오히려 혼란만 조장했다. 이 책은 선과 악이 분명하고 사람의 천성을 한결같이 그렸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까지 불편한 감정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자비란 감정 한 툴 느낄 필요가 없는 인간의 비겁한 변명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회도, 아쉬움도, 한탄도 이 모든 것을 들어줄 가치가 있는 이는 왕관의 무게를 아는 자라는 걸 명확히 전달한다.
임진왜란의 일대기와 인조반정 이후 폐위된 광해군. 이들의 이야기가 신나고 즐거울 리는 없다. 하지만 무덤덤함 속에 담긴 회한이 느껴졌다. 스스로 지킬 힘없는 나라의 설움과 그 속에서도 밝은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광해와 충신들의 고뇌를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애달프게 그렸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허구는 1퍼센트에 지나지 않으며 철저히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쓰였다는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임진왜란 그 자체다. 또한 기록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작은 돌멩이는 고요한 가슴 속에 큰 파문을 남겼고 확인할 수 없는 진실은 확신이 된다.
전쟁, 이 무자비만 행위 때문에 아무 죄 없는 백성들은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을 버려야만 했다. 아녀자들은 명군, 왜군 할 것 없이 모두에게 희롱당하고 무능력한 지도자 아래서 일해야 했던 충신들은 그를 대신해 고충을 겪는다.
한 사람의 무능력한 지도자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는지 한 권의 책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작중 유성룡은 광해를 위해 징비록을 남긴다. 이에 광해는 그가 자신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는다. 임금이라는 자리는 준비 없이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로 결단을 갖고 차지하는 것이라는(p400) 당연하지만 보통의 임금들은 잊어버리는 그 이치를 국난 속에서 백성을 버리지 않는 광해는 안다.
외부의 적에는 냉철하지만 내부의 적 앞에서 견고한 벽이 흐트러진 광해의 의지는 일장춘몽으로 끝난다. 전시 중에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라는 뿌듯함이 채 가시기 전에 역사는 비극으로 흘러간다. 결국 시대의 승자는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비겁하고 권력욕에 사무친 사람이라는 쓸쓸한 교훈만 남긴다. 난세 속에 영웅이 나고 이순신, 유성룡, 광해는 우리 모두가 열망한 영웅의 면모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기에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생전에는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당신들이 행한 무수한 노력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광해와 이순신>은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다. 우리의 현재를 담고 있다. 핏줄로만 연명했던 조선왕조와 달리 이제 우리는 국민주권을 실현하고 있다. 또 다른 임진왜란을 막으려면, 이처럼 원통하게 인재들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책임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