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Rosso + Blu 세트 - 전2권 (에쿠니 가오리 다이어리 3종 중 색상 랜덤 증정)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난주.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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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남자와 여자, 서로 다른 두 생명체가 같은 시간을 각각의 시점에서 쓴 로맨스 소설이다. 책으로 읽는 건 처음인데 영화로 볼 땐 정말 낭만적이고 로맨틱하기 그지없었다. 오죽하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과 피렌체의 두오모를 거닐어 보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차 없이 엑스표를 쳤지만 말이다.

 

영화를 본 것은 꽤 오래전 일인데 내가 너무 자란 걸까, 아니면 사랑에 대한 생각이 세월에 따라 변한 걸까. 이 내용을 로맨틱하다며 봤다니 그때의 나는 과연 무슨 생각이었을지 상상이 안 간다. 얼마 전 교내 글쓰기대회에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로 수상한 글인데, 사랑에 관한 나의 철학이 명확히 담겨있다.

 

사랑은 책임이다. 한순간 달아오르는 감정은 누구나, 그 무게의 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불타오를 수 있다. 불꽃같이 타오르는 사랑을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세상은 너무도 복잡해서 한 가지만을 사랑하기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너무 많다. 처음의 설렘은 변색되기 마련이고, 영원할 것 같은 감정은 권태로움에 빠진다. 불완전한 사랑의 완성은 결국 책임이다. ......(중략)......수많은 예술가가 숭고한 사랑을 노래하고 찬양했다. 내일이 없는 열렬한 사랑을 더없이 숭배했는데, 인간의 사랑은 그러해서는 안 된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에 더욱더 갈망한 게 아닐까 싶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사랑은 지독한 책임감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성을 동반한 책임 있는 사랑은 어찌 보면 로맨틱하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은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나의 의무를 충실히 행한 사랑은 그 결과가 어떨지라도 미련의 정도가 깊지 않다.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다지만 책임과 신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주인공, 아오이와 쥰세이의 사랑을 그런 사랑으로 볼 수 있을까?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지독하게 이기적인, 사랑할 자격이 없는 두 남녀가 잘 만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 둘은 헤어졌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건 거스를 수 없는 순리지만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몰랐던 미숙했던 남녀의 풋사랑은 후회만을 남겼다.

 

이 둘은 분명 헤어졌다. 헤어지고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순정을 불태우지도 않았다. 각자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으며 그 곁에는 서로 다른 이성이 지키고 있었다. 아오이는 돈 많은 미국인 남자친구 집에 무려 4년을 기생하며 살고 있다. 쥰세이는 출중한 외모를 지녔지만 순수함을 잃지 않은 미모의 여자친구와 메미와 반동거와 다름없는 형태로 지내고 있다. 남녀 사이란 게 아무리 식장 들어가기 전까진 모를 일이라지만 불나방처럼 찰나의 순간 다른 이성에게 눈을 돌린 것도 아니고 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도 분명 아오이와 쥰세이의 시간 중 하나일 텐데 이들은 철저히 부정한다. 아오이와 쥰세이의 시간은 대학 시절, 헤어졌던 전 연인과의 추억 속에서 멈춰있다. 그렇기에 자신 옆에 다른 상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이 그날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밀라노의 두오모같은 장엄함은 없지만, 부드러운 색상에 사랑스럽고 따뜻한 사랑하는 사람들의 두오모라 불리는 피렌체의 두오모를(p141), 10년 후 5월에 함께 오르자는 과거의 약속을 위해, 이 둘은 현재를 살았다.

 

누가 연인 아니랄까봐, 두 주인공은 현재의 연인에게 충실하지 못하고 빈껍데기처럼 그들을 괄시한다. 사랑을 몰라 헤어졌던 두 남녀는,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사랑에 미숙했고 상대에게 상처 주는 걸 서슴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사랑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로맨틱한 사랑이다.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아갈 필요는 없지만 호감의 감정을 느끼는 상대를 존중하는 예의는 필요하다 생각한다. 주인공답게 세기의 로맨스를 찍는 이들의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성문화된 약속도 아닌, 그저 스쳐지나가듯 만나볼까? 했던 작은 약속 때문에 파생된 결과다. 무엇 때문에 그리 과거에 집착하는지 아오이와 쥰세이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영화만 봤을 때는 마빈과 메미와 함께한 세월이 그리 깊은 줄 몰랐기에 두 주인공의 사랑을 응원하고 아름답다 생각했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이 둘의 사랑이 역겹기까지 했다.

 

인간의 도리도 지키지 못할 만큼 사리분별 없는 것은 쥰세이의 사랑이고, 무색무취의 매력을 자랑하며 홀로 공상하고 상대의 자존감 깎아내리는 건 아오이의 사랑이다. 아오이의 시점에서 쓴 Rosso편을 먼저 읽고, 쥰세이의 이야기를 쓴 Blu 편을 후에 읽었는데 이 순으로 읽는 게 맞는 것 같다. 처음 Rosso편 결말을 읽고 헐? 이었다면 Blu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으며 서로 예쁜 사랑하며, 상대를 이 사회에 방생시키지 말라며 이 둘을 응원하게 됐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찾아볼 수 없는 두 남녀가 서로 잘 만나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갈망하던 사랑을 드디어 쟁취했다. 이 둘의 앞날은 과연 어떨까? 동화 속 공주 이야기의 마지막은 항상 왕자님과 공주님이 서로 사랑의 키스를 하며 아름답게 끝이 난다. 결혼 후 왕비로 살아가기 위해 겪는 현실적인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냉정과 열정사이의 결말은 책 속에서는 해피엔딩을 암시했지만 나는 이 둘이 그리 아름답게 살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10년 후 만나자는 약속을 추억삼아 그리움을 무기 삼던 시절은 끝이 났다. 앞으로 이 둘은 미래라는 흰 도화지에 새로운 발자취를 남겨야 하는데, 이기적인 사랑만을 행한 두 남녀가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며 살 수 있을까?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글에 썼듯이 이 책이 한국과 일본에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의 탈을 썼다면 이러한 사랑을 해선 안 된다는 금단의 영역을 아름답게 써내려갔기에 본능 깊숙이 숨어있던 악의 유혹이 속삭인 게 아닐까 싶다

 

      

p.s 다이어리에 혹한 흔한 합리적인 소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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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5 1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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