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단의 스캔들
홍지화 지음 / 작가와비평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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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00년대,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남다른 재능을 보인 천재들의 일기를 몰래 엿본 것처럼 작가는 철저히 그들의 관점에서 이해를 구했다. 이들의 사랑이 작품에 얼마나 영감을 주었으며 삶에 의미가 있었는지. 괜히 한 글자라도 어설프게 썼다간 귀찮은 송사에 얽힐 수도 있고 어쩌면 같은 예술을 하는 입장이다 보니 옹호해 주고 싶었던 걸까. 예술가는 온전히 작품으로만 봐야한다는 생각이 더더욱 강하게 들었다. 세상의 틀에 갇혀 벗어나지 않는 삶을 지향하는 일반인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자유분방함에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의 사랑도 결코 뒤이어 나오는 작가들에 비해 그 충격의 정도가 덜하지 않았다. 처음 이상 편을 읽었을 때는 진보적인지 호구인지 모를 사상에 역시 천재는 사랑도 클래스가 다르구나를 외쳤다. 문단에서는 찬사를 보내지만 나 같은 일반인은 이상의 작품을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른다. 그의 작품에 함축된 의미를 가슴으로 읽을 수 있을 만큼 나의 문학적 성취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곱상한 서울 도련님인줄 알았는데, 기생 팔자나 허울 좋은 예술가의 애인 팔자나, 바뀌지 않은 삶에 염증을 느꼈을 금홍과 변심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무능한 남자 이상.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처럼 끝이 보이는 사랑이었다. 하지만, 금홍이란 여인이 이상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점에서 천재의 영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었다. 아무튼 여기서 제일 이해가 가지 않은 건 이상의 마지막 부인 변동림인데, 도대체 뭘 보고 배울 만큼 배운 여자가 이상과 결혼을 결심했는지, 내 친구라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렸을 텐데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배울 만큼 배운 여자들의 어리석음을 보아하니 그래도 이상 정도면 잘 고른 건가 싶은 모순이 생겼다.

 

조선을 발칵 뒤집었을 세기의 스캔들, 김우진과 윤심덕의 사랑이라 주장하는 불륜은 정말 혀를 차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19, 지금 이 순간에도 김우진과 윤심덕같은 사랑은 더럽다고 손가락질 받을 텐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싶다. 한때는 조선의 프리마돈나가 되고 싶었던 배울 만큼 배운 여자, 윤심덕의 선택은 결국 김우진이라는 갑부의 첩이었다. 이들의 만남과 사랑에 빠진 스토리를 아무리 읽어도 절절함보다는 아주 세기의 사랑 납셨다는 비아낭만 나왔다. 자살을 마치 훈장처럼 생각한 예술가다운 마지막이었을 뿐, 이들의 만남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다. 김우진은 찌질했고, 윤심덕은 한심했다. 마치 냉정과 열정사이의 아오이와 쥰세이같은 남녀의 현실 판을 그대로 옮겨왔구나 싶었다. 서로를 파괴하는 남녀가 만나 파멸에 이르렀다. 서로를 가까이 할수록 악영향만 끼쳤고, 그 결과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대한해협에서 마감해야 했으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손가락질 받는 불륜의 대명사가 되었다. 앞 뒤 안 가리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으니 뭐, 본인들은 여한 없는 삶이었겠다.

 

혹자들은 나혜석을 조선의 페미니스트 칭하지만, 뭐 굳이 틀린 말도 아니지만 마치 개신교 신자들이 하나님이 아닌 이를 경배할 수 없다며 신사참배를 거부한 걸 독립운동가라고 훈장을 내려주는 그런 류와 비슷한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싶다. 나혜석의 행보는 여권 신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기 마음껏 살다갔구나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정말 억압받는 여성들을 안타깝고 가엾게 여겼더라면, 염문을 뿌리는 남자마다 유부남일 리가 없지 않는가. 아버지의 첩 때문에 힘들어하던 어머니를 보고 자라서, 본인은 첩을 자처했다. 생활고 때문에 어쩔 수 없던 선택도 아니었다. 그냥, 본인의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서 배울 만큼 배운 신여성의 행보는 유부남이든 뭐든 물불 안 가리고 달라들었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서 본인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건 너무 큰 욕심 아닌가? 적어도 나혜석에게는 언제나 더 좋은 선택지가 존재했다. 본인이 그 길을 선택하지 않고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길을 택했을 뿐이다. 자기 맘대로 하면서 살다가 잘못된 길을 들었다는 걸 알고는 수습하려 한 것이 이혼고백서가 아니던가.

 

나는 결코 내 남편을 속이고 다른 남자, C를 사랑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나이다. 오히려 남편에게 정이 두터워지리라고 믿었사외다. 구미일반 남녀 부부사이에 이러한 공공연한 비밀이 있는 것을 보고, 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중심되는 본부나 본처를 어찌 않는 범위 내의 행동은 조도 아니요, 실수도 아니라 가장 진보된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판명할 때는 웃어두는 수요, 일부러 이름을 지울 필요가 없는 것이외다(p276).

 

지금의 우리도 이해할 수 없는 이 글이, 그 당시 얼마나 받아들여졌겠나. 정조는 취미라는 관념이야 지금에서는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그것도 미혼일 때나 이야기지 기혼자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그녀가 최린과 불륜을 했을 때 평생을 나혜석만을 사랑할 것처럼 굴던 남편 김우영도 역시 바람을 피고 있었다고 한다. 누가 먼저 바람을 폈는지 지금의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이 부부의 관계가 파국에 이르는 과정에서 김우영의 잘못만이 절대적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싶다. 김우영이 나혜석을 존중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조선 최초로 세계를 여행한 여자가 될 수 없었을 테다. 남 부러울 것 없이 살 수 있던 환경에서 그녀에게 부족한 건 딱 한 가지 예술혼이었고, 그녀의 파멸도 결국 예술혼을 주체하지 못한 자유분방함에서 비롯된다.

 

나혜석 편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안타깝다. 그녀는 윤심덕처럼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 아니었다. 생존과 명성을 위해 돈 많은 남자를 잡아야한다는 절심함도 없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나혜석과 같은 인물이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한 핑계가 아니라 진실로 억압받는 여성들을 위해 세상과 맞서 싸웠다면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사의 형세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녀는 그 당시 조선에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능력 있는 여성이었으니 말이다.

 

도대체 여성 문인들은 왜 저렇게 밖에 못사는 걸까, 마지막 모윤숙 편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런 여자들 때문에, 한때는 여자는 많이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아니었나 싶다. 배울만큼 배운 여자들이 보이는 행보라고는 공통적으로 첩을 자처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이제 국가 주도적으로 배운 여자들을 모아 낙랑클럽을 만들었다.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배운 여성은 기생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가장 많이 배운 신여성들은 기생들이 하던 일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 그러니 배운 여자에 대한 인식이 좋을 수가 없지 않는가. 낙랑클럽의 여성 회원들은 A여대 출신들로, 미모와 지성을 두루 겸비한 명문 집안의 여성들에 한정됐으며 무엇보다 영어를 막힘없이 구사할 줄 알아야 했다(p341)는데, 그 정도 재원들이 속된 말로, 고급 성접대를 했다니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낙랑클럽이 갖는 상징적 의미 중 하나는, 힘이 약한 국가의 여성들은 고학력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p349)이라는 표현은 슬펐다. 시대가 그녀들을 고급 창기로 내몬 것일까. 아무리 배워도 다른 일은 할 수 없으니? 그 시대를 살지 않았기에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불편한 감정을 집약해 놓은 문장이라 생각한다. 이승만의 단독정부를 세우는데 일조한 것이 정말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는지. 모윤숙의 친구 메논은 후세에 재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을 때, 분명 더 평범한 선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밖에 살지 못한 프레디 머큐리가 안타까웠다. 예술가는 일반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가보구나 라고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이해가 안가는 건 안 가는거다. 그런데 보수적이라 생각했던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문인들 역시 예술가의 기질이 철철 넘쳐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을 했다는 건 예술가에 대한 편견만 더했다. 작품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진심으로 그 사람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 작품이라. 마치 알맹이는 없는 겉만 사랑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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