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한중일 세계사 4 - 태평천국 Downfall 본격 한중일 세계사 4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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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 중국 학생들과 자주 언쟁을 벌이곤 했었다. 뼛속까지 중국 프라이드가 넘치는 이들에게 한국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공을 바친 하찮은 속국정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부분적으로는 사실일지라도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왜 잘못은 선조들이 했는데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원망스러웠다.

 

중국은 분명 오랜 시간 아시아의 중심이었다. 지금에야 싸구려의 상징인 made in china도 한때는 최고급 수입품이었다. 모든 새로운 물자와 문물은 중국을 통해 전해졌고, 막대한 인구와 땅덩어리로 아시아를 호령했다. 조선에게 있어 그런 중국의 멸망은(,청조를 모두 포함하여)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을 테다. 혹 왕조가 바뀐다 할지라도 그 자리는 중국의 새로운 세력이 차지하여 이전의 명성을 이어갈 거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구 세력의 개입은 중국을 향한 조선 정부의 예측을 백지장으로 만들었다.

 

한국사를 배우면서 조선이 놓친 골든타임은 끊임없이 배웠다. 결과적으로 청일전쟁(1894)에서 일본이 승리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사실 청나라가 왜 그리 쉽게 무너졌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는데, 청나라가 고작 일본에게 패했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4편은 태평천국 운동(1851~1864) 중 혼란했던 청나라를 다룬다. 전편들을 보지 않았고, 또 중국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 한지라 처음에는 등장인물도 헷갈리고 상황도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모르는 부분은 인터넷으로 찾으면서 전후관계를 파악하며 읽다보니 대략적으로 청나라의 상황이 파악됐다.

 

조선 정부의 무능함은 뭐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청조 말기 그들이 망조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너무 뻔하지만 당연한 이야기를 만화를 통해 쉽게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지도자는 없었고, 간신들이 판치며, 외세 의존적인 성향은 조선과 판박이다. 거기다 능력은 없으면서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어설프게 대놓고 깡패 짓을 하러 온 서구 세력들을 건들이다 더 큰 배상금을 물어줘야 하는 처지에 이른다. 얼마 전 읽은 마스의 마지막 문장이 생각난다.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화성은 화성인의 것이다. 화성인이 비록 미생물에 불과하더라도.” 칼 세이건은 화성을 향한 인류의 탐욕에 경고했다. 하지만 인류는 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정복자들에게 미지의 세계는 지켜야 할 곳이 아니다. 아시아로 진출한 서구세력에게 중국은 이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복해야 할 대상이다. 중국이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잘 살고 있는, 설령 잘 돌아가지 않더라도 가만히 두면 알아서 자정할 타국을 마음대로 침범해 괴롭힌 서구세력이 분명 잘못한 일이다. 하지만, 청 정부는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외세와 맞서 싸워야 할 시기에 내부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너무 많은 진을 뺐고, 내부적으로 싸우기 위해 외세를 끌어드렸다. 이렇게 삽질을 했던 이 시기가 어찌 보면 한중일의 마지막 골든타임이었을 테다. 한국과 중국은 이 시기를 현명하게 보내지 못했고, 일본은 조금은 다른 행보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의 판단은 옳았고, 조선과 중국은 난세를 해결하지 못했다. 세 나라는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 과연 그것이 정말 최선이었을까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영원히 굳건할 것 같던 중국도 맥없이 무너졌다. 시대의 흐름은 대국도 자연스럽게 따라야한다. 3권의 일본 개항 편과 4권의 태평천국을 비교해본다면 두 나라의 명암이 극명히 비교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사 그 자체만으로도 힘겨워 다른 나라가 이 시기에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유기적인 만큼 한국사 그 자체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주변 나라들의 상황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또한 망국의 클리셰는 나라불문하고 똑같다는 걸 느꼈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던 19세기의 역사를 빽빽한 글씨로 읽어야 한다면 몇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포기했을 테다. 하지만, 만화책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태평천국군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석달개의 비극으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앞으로 청 정부의 행보와 태평천국군의 운명이 궁금해진다. 다음편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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